‘온가에시’에서 ‘온오쿠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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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가에시’에서 ‘온오쿠리’로
  • 정순일 (방목기초교육대학)교수
  • 승인 2015.10.11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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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가에시’에서 ‘온오쿠리’로

온가에시’에서 ‘온오쿠리’로

일본 유학시절 이따금 한국을 방문하게 되면 대학원 동료들을 위해 전통과자를 챙겨서 돌아가곤 했다. 모두가 가족처럼 지냈던 연구 공동체였기에 나의 한국방문 스케줄을 동료들이 강하게 ‘의식’하고 있을 거라는 막연한 부담감도 있었고, 그런 식으로나마 우리의 먹거리를 소개하고 싶다는 생각도 있어서였다. 대학원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내가 “잘 다녀왔습니다”하면서 포장을 풀면 친절한 여자 동료들이 녹차를 마련해주었다. 연세가 지긋하신 지도교수도 과자나 사탕과 같이 달달한 음식을 좋아하시는 분이라 그와 같은 티타임을 무척 반기시곤 했다. 그렇게 우리는 이야기꽃을 피우면서 수업을 위한 예열(豫熱)에 들어갔다.

그렇게 과자 선물을 풀어놓고 나면 꼭 일 주일 후에 일본인 동료 몇몇이 자그마한 선물을 챙겨주곤 했다. 도쿠시마현 출신의 후배는 시코쿠산 ‘스다치’(레몬처럼 신맛이 나는 작은 열매)를 검은 봉지에 한 가득 담아 건네주는가 하면, 도쿄 근교 사이타마현에서 통학하는 동료는 고향의 특산품이라며 일본식 간장을 챙겨주었다. 평소에는 무뚝뚝한 동기 녀석도 집에 한 권이 더 있어 주는 거라며 값이 제법 나가는 연구서를 스윽 내밀었다. 나는 기껏 공항 면세점에서 만 원 정도의 부담 없는 가격에 과자를 구입했을 뿐인데 모두들 가치 있는 물건으로 답례를 하니 오히려 미안한 마음이 들 정도였다. 처음에는 한사코 거절했으나 그래도 받아두라 하니 머쓱해하며 받아들곤 했던 기억이 있다.

말로만 듣던 ‘온가에시(恩返し) 문화’가 이런 거구나! ‘온가에시(恩返し)’란, 은혜나 친절을 베풀면 그에 대해 보답하는 것인데, 동료들의 소박하면서도 진심어린 온가에시를 실제로 겪게 되니 형언할 수 없는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 나도 누군가의 호의를 받게 되면 어떤 형태로든 감사를 표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박사과정 막바지에 한 재단법인으로부터 장학금을 받게 되었다. 논문 작성은 물론, 도쿄의 고물가로 생계유지 자체가 힘들었던 때라 너무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장학금 수여식에서 장학생들에게 ‘1분 스피치’를 하도록 했는데 평소 생각하던 바도 있어서 “부족한 저에게 귀중한 지원을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장학재단에 온가에시를 할 수 있도록 더욱 열심히 연구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수여식이 끝나자 상무이사가 내게로 다가와 “조금 전에 온가에시하겠다고 말하던데, 그보다 온오쿠리(恩送り)를 해보시면 어떨까요”라고 이야기했다. 장학재단은 장학생들에게 특별히 보답을 받기 위해 지원하는 게 아닌데다가, 재정상황이 나쁘지 않은 모회사도 있기 때문에 장학생들의 보답은 당장 필요한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 대신 정말 나의 도움과 친절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받은 사랑을 전해보라는 조언이었다.

‘온오쿠리(恩送り)’란 누군가의 친절과 베품을 경험했다면 그것을 상대방이 아니라 친절과 베품을 필요로 하는 또 다른 누군가에게 전하는 것을 말한다. 앞서 말한 ‘온가에시’가 양자의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은혜에 대한 보답이라면, ‘온오쿠리’는 사랑이 무한대로 확산하는 것을 뜻하기에 상무이사가 던져준 한 마디는 심금을 울리기에 충분했다.

그래. 내 사랑과 도움을 정말로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내가 받은 사랑과 은혜를 전하는 거야! 이후로는 은사님들께 받은 사랑에 대해 감사한 마음도 가지고 그에 대해 보답하고자 하는 마음도 가지지만, 동시에 내가 은사님들께 좋은 가르침과 큰 사랑을 받았던 것처럼 나와 함께 하는 학생들에게 더 좋은 교육을 제공하고 진심어린 상담자가 되기 위해서도 부단히 노력한다. 내가 어려울 때 장학금을 준 여러 기관과 모교에 보답하고자 하는 마음도 가지지만, 내 도움을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후배나 제자가 없을까를 고민한다.

세상에 가치 없는 사랑의 형태가 있을까. 그런 의미에서 은혜를 베풀고, 또 그에 보답하는 ‘온가에시’ 문화도 무척이나 소중할 것이다. 하지만 단지 양자 관계에 머무는 사랑, 고인 사랑이보다도 다방면으로 무작위로 뻗어나가고 흘러가는 사랑, 그렇게 확산해가는 ‘온오쿠리’와 같은 사랑을 우리 명지인의 마음속에 품어본다면 어떨까?

온가에시가 되었든 온오쿠리가 되었든 정작 중요한 것은 사랑이 누군가로부터는 ‘출발’해야 한다는 점이다. 바로 당신에게서 사랑이 발신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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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순일 (방목기초교육대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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