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사는 하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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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는 하셨습니까?
  • 유재희(방목기초대학 인문교양) 교수
  • 승인 2015.10.04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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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는 하셨습니까?

식사는 하셨습니까?

 

집요한 추적 수사 끝에 범인임을 확신했지만 결국 증거부족으로 용의자를 보내게 된 베테랑 형사. 허무함과 원망이 섞인 영화 속 그의 한 마디는 유행어가 됐다.

 

"밥은 먹고 다니냐?"

 

‘힐링’과 ‘복고’의 열풍이 지나간 요즘 방송계를 점령하고 있는 것은 단연 ‘쿡방’이다. 산골에서도 밥 해먹고 심지어 정글에 가서도 요리를 한다. ‘집밥레시피’는 너도나도 한번쯤은 따라 해봤다. 한 때는 웰빙, 힐링 운운하며 돈 들여 사먹고, 떠나고 했지만 이제는 소박하나마 직접 해먹는 밥에서 의미를 찾게 되었다. 과정에서 즐거움을 얻고 나누어 먹으며 정을 쌓는다. 혼밥(혼자 먹는 밥)이어도 괜찮다. 인스턴트로 끼니를 때울 때 보다 나를 위해 요리할 때 자신이 더 소중해지는 느낌이다.

 

생각해보면 밥에 대한 우리의 애착은 예부터 남달랐다. 좋은 일이 생기면 동네 사람 불러다 배불리 먹였고 몇 년 후의 장맛을 위해 지금의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았다. 고향의 맛은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어머니의 손 맛은 사랑을 대변한다.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과 차는 한 잔 할 수 있어도 밥을 같이 먹기란 쉽지가 않다. 그래서 의례적인 인사말보다 ‘밥 한 번 같이 먹자’는 말이 더 친근하게 느껴지는 것이 아닐까. 요 몇 달 친정아빠가 건강상의 이유로 식사를 잘 못하셨다. 요즘 나에게 소원이 있다면 아빠가 잘 드시는 모습을 보는 것이다. 잘 먹지 못하는 것이 이토록 마음 아픈 일인 줄 그 동안은 미처 몰랐다.

 

배우 송강호가 며칠을 고심했다는 그 대사는 ‘그런 짓을 하고도 밥이 넘어가냐’는 의미였다고 한다. 하지만 십여 년 전 ‘살인의 추억’을 볼 때도, 원래 의도를 알게 된 지금도 나에게 그 말은 연민 어린 안부로 들린다.

 

연일 탐스러운 먹방이 등장하고, 동네 아저씨(같지만 실은 성공한 사업가인 아저씨)가 손쉬운 요리 비법을 알려주고, 연예인의 냉장고가 열린다. 그런데 정작 우리는 잘 먹고 다니는지.

 

7년째 수업을 하면서도 변변히 마음 한 번 못 전했다. 사랑하는 학생들에게 묻고 싶다.

 

“식사는 했어요?”

 

명진칼럼 사진.jpg

유재희(방목기초대학 인문교양)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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