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전문점이 도서관
1999년 7월 이화여대 앞에 스타벅스 1호점이 문을 연 이후, 대한민국은 커피공화국으로 변신했다. 커피전문점은 현대인들의 삶에 상당히 영향을 미쳤다. 식사는 걸러도 커피는 거르지 않는 이들이 생겨났고, 생활비에서 커피값이 차지하는 비중도 커졌다. 커피전문점에서 연인이나 친구를 만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 돼버렸다.
하지만 더 놀라운 사실은 커피전문점에서 업무를 보는 직장인들, 그리고 독서를 하거나 온갖 종류의 공부를 하는 사람들도 매우 많다는 것이다. 특히 대학생들이 조별 모임을 갖거나 개인 공부를 하는 경우가 정말 많다. 업무야 그렇다고 쳐도 공부나 독서를 커피전문점에서 한다니! 책을 보거나 공부를 하려면 쥐죽은 듯 조용한 도서관이 적격 아닌가? 무슨 이유로 그 조용한 도서관을 놔두고 시끌벅적한 커피전문점을 이용하는 것일까.
그 이유는 바로 사회적 촉진(social facilitation) 때문이다. 사회적 촉진이란 혼자할 때보다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수행이 향상되는 현상이다. 이를 처음 발견한 사람은 스포츠심리학자인 트리플렛(Norman Triplett)이다. 사이클 선수들이 시합 전 준비운동을 할 때에도 혼자보다는 다른 선수와 함께 할 때 더 빨리 달린다는 것을 목격했다.
어떤 실험에서는 아이들에게 줄을 감으라는 과제를 주었다. 이 때 아이들을 두 조건에 배치시켰는데 한 조건에서는 혼자, 다른 조건에서는 다른 아이들과 함께 하도록 했다. 실험자들은 줄을 감는 속도가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일러주었다. 하지만 두 번째 조건의 아이들이 훨씬 빨리 감았다. 어떤 보상을 제시한 것도 아니었다. 두 조건의 차이는 단지 ‘혼자’와 ‘함께’였다.
심리학자들은 이와 반대 현상, 즉 타인이 존재하기 때문에 오히려 수행이 저하되기도 한다는 것을 알아냈다. 이를 사회적 저하(social inhibition)라고 한다. 타인의 존재가 수행을 증가시키거나 저하시키는 이유는 무엇일까? 과제의 난이도가 그 열쇠다. 쉬운 과제는 타인과 함께 있을 때 더 잘 하지만, 어려운 과제는 그 반대인 것이다.
커피전문점에서 하는 공부나 독서, 업무도 마찬가지다. 매우 어렵다거나 그래서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해야 할 상황이면 커피전문점은 좋은 장소가 아니다. 그러나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이나 쉽게 처리할 수 있는 업무, 그리고 어느 정도 자신감이 있는 공부는 너무 조용한 곳보다는 오히려 커피전문점에서 수행이 더 좋을 수 있다.
만약 커피전문점에서 노트북이나 스마트폰으로 뭔가를 골똘히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옆에서 부담업이 떠들어도 된다. 그는 분명히 가볍게 할 수 있는 게임이나 인터넷 서핑을 하고 있을 것이다. 만약 공부를 하는 것 같아도 크게 신경쓸 필요는 없다.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해야 하는 어려운 공부나 독서라면 커피전문점에 오지 않았을 테니 말이다.
반복적이고 지겨워서 계속 딴청을 피우게 되는 업무나 공부를 능률적으로 하고 싶은가? 오랜만에 마음잡고 가벼운 책을 읽고 싶은가? 조용한 도서관보다는 커피전문점이 좋은 대안이 될 수도 있다.
필자: 누다심 심리학 칼럼니스트 www.nudas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