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겐 아직 광복이 오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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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겐 아직 광복이 오지 않았습니다
  • 안수현 기자
  • 승인 2015.09.01 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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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이 길거리에 서지 않아도 되는날까지 – 수요시위 취재기

우리에겐 아직 광복이 오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이 길거리에 서지 않아도 되는날까지 – 수요시위 취재기

 

2015년은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 광복 70주년이 되는 해이다. 이에 따라 지난 8월 15일 광복절을 앞두고 국내 각지에서는 축제 준비로 떠들썩했다. 하지만 아직 광복을 맞이하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다. 아직도 그들은 매주 수요일 일본대사관 앞에서 사죄하지 않는 일본과 25년째 싸우고 있다.

이에 본지는 수요시위를 취재하여 그들이 왜 여전히 싸울 수밖에 없는지, 어떻게 싸우고 있는지 알아보고 대학생으로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을지 알아봤다.

 

늘 교묘하게 피해가는 일본정부

지난 8월 14일, 일본의 내각총리대신 아베 신조는 담화문을 발표했다. 하지만 종전 70주년 담화에 일본은 ‘위안부’라는 단어조차 언급하지 않았다. 이번 아베 담화는 오히려 과거의 고노 담화와 무라야마 담화에도 못 미치는 것이었다.

고노담화에는 ‘이번 조사 결과 장기간, 그리고 광범위한 지역에 위안소가 설치돼 수많은 위안부가 존재했다는 것이 인정됐다. 위안소는 당시의 군 당국의 요청에 따라 마련된 것이며, 위안소의 설치, 관리 및 위안부의 이송에 관해서는 옛 일본군이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이에 관여했다’ 와 같은 사실 인정, 그리고 ‘본 건은 당시 군의 관여 아래 다수 여성의 명예와 존엄에 깊은 상처를 입힌 문제다. 정부는 이번 기회에 다시 한 번 그 출신지가 어디인지를 불문하고 이른바 종군 위안부로서 많은 고통을 겪고 몸과 마음에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은 모든 분에 대해 마음으로부터 사과와 반성의 뜻을 밝힌다’와 같은 인식을 보여줬다. 하지만 이번 아베 담화에서는 ‘전장의 그늘에서 명예와 존엄에 상당한 상처를 입은 여성들이 있었던 것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라는 표현이 전부였다. 이를 두고 윤미향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이하 정대협) 상임대표(이하 윤 대표)는 “장장 20여 분에 걸친 아베 담화는 반성, 사죄, 침략, 식민지라는 말은 들어갔으나 일본 정부가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어떠한 잘못을 저질렀는지, 일본 정부는 어떤 책임을 갖고 있는지, 일본 정부는 앞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반성과 책임의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아울러 일본 정부가 우리나라를 불법적으로 식민지 삼았고 그 식민지에 대해 일본이 어떤 책임이 있으며 조선의 사람들이 어떠한 고통을 겪었다는 인식 역시 찾아볼 수 없었다. 아름다운 말은 들어갔으되 여전히 그 속에 일본 정부가 져야할 반성과 책임은 없는 것이다”라며 일본 정부를 규탄했다.

4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한국 사회는 피해자 할머니들을 향해 “부끄럽다, 치욕스럽다”며 손가락질을 했다. 이런 사회 분위기에 그들은 사람들의 눈을 피해 숨어 살았다.그러던 지난 1991년 8월 14일 고(故) 김학순 할머니가 그러한 사회 인식을 무릅쓰고 용감하게 기자들 앞에서 당신의 생생한 경험을, 위안부 역사를 증언했다. 그 후 김학순 할머니의 최초 증원을 필두로 한국, 아시아, 네덜란드 등 세계 각지의 피해자들이 용기를 얻고 여성운동에 앞장서기 시작했다.

91년 9월 우리나라 정부는 ‘정신대 실태조사대책위원회’를 구성했고 12월 외교부(당시 외무부)는 일본 대사에게 이 문제에 대한 사실을 밝힐 것을 요청했다. 우리나라 정부는 이 문제를 공식적으로 제기하기로 방침을 정한 후 당월 도쿄에서 개최된 한일아주국장회의에서 일본에 우선 철저한 진상 규명을 강력히 요구했다. 그 후 미국 국립 문서보관소에서 일본군이 위안부 모집, 수송, 관리 등에 개입한 사실을 입증하는 문서를 발견했다. 이어 92년 1월에는 요시미 요시아키 교수가 일본 방위청 방위연구소 도서관에서 발견한 위안소 관련 자료가 공개됨으로써 일본 정부는 더 이상 군의 관여를 부정할 수 없는 처지가 됐다. 결국, 1992년에 일본 정부는 군의 개입을 시인했고 이듬해인 93년 8월 고노 장관은 군의 개입과 관여를 인정하는 담화를 발표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식민지 시대에 관한 법적 배상은 65년 박정희 정권이 체결한 한일협정으로 다 해결됐다고 하는 입장이다.

현재 일본 정부의 태도를 보면 고노담화의 진정성까지 의심스러운 상황이다. 그들이 과거에 저지른 만행을 그들 스스로가 반성하고 뉘우치고 있다면 그에 걸맞은 행동이 뒤따를 것이다. 과거를 잊지 않기 위해서, 또 철저하게 재발 방지를 위해 아이들 교육을 시키고 역사를 왜곡하는 짓은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현재 고노 담화를 수정한다고 이야기하고 있으며 하루가 멀다 하고 독도 영유권 문제를 들먹이고 있다. 그들이 보여주는 여러 행보들에서 진심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더욱 분노하게 된다. 매주 수요일 집회가 열릴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

1992년 1월 8일 미야자와 전 일본 총리의 방한을 계기로 시작된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그들을 규탄하는 시위대들의 중심엔 김복동(90)·길원옥(88) 할머니가 있다. 구순의 나이에도 그들은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매 주 한결같이 그 자리를 지킨다. 수요시위가 열리는 장소 맞은편엔 일본대사관이 있는데 그 창문은 늘 블라인드가 쳐 있다. 그리고 1층엔 우리나라 경찰들이 그들을 지키고 있다. 일본 정부가 눈 가리고 귀를 막지만 진실을 외면할 수 없을 것이다.

수요시위는 노래 <바위처럼>의 합창으로 시작된다. 이어서 인사말과 윤대표의 경과보고, 참가자 소개 및 자유발언 순으로 진행되며 성명서 낭독을 끝으로 약 한 시간 가량의 수요시위는 종료된다.수요시위에는 젊은 사람들이 굉장히 많이 찾아온다. 대학생들도 찾아 볼 수 있는데 수요시위에 참가하여 자유발언을 한 강원대학교 역사교육학과 2학년 남궁주현 학생은 “아베 담화와 일본 정부의 태도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면서 “역사는 과거를 통해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다. 사과는커녕 기세등등해진 자신들을 똑바로 비춰보고 역사의 거울에 반드시 비춰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우리도 가만있을 수 없다. 일본의 역사왜곡을 바로잡아야 한다. 더 이상 끌려다니지 않고 아픈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진실을 알리고 다음 세대로 전달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한신대학교 심리아동학부 2학년 정예연 학생은 “불편하지만 꼭 알아야 할 진실을 알게 되었다. 왜 진작 찾아오지 않았을까 하는 부끄러움도 느꼈다. 오늘부터라도 함께 할 수 있어서 감사하고 있다”라고 밝히면서 “수많은 수요시위 동안 모두가 목이 터져라 외치고 있어도 명확한 문제 해결은 되지 않고 있다. 여러분이 앞으로도 많은 캄캄한 현실과 역사를 밝히는 등불이 되어주시길 바란다”고 했다.

수요시위는 매주 수요일 낮 12시 정각에 일본대사관 앞 ‘평화로’에서 열린다. 사전 참가신청을 하지 않아도 시간에 맞춰 가면 참가할 수 있다. 수요시위 현장에서 단체 참가 방명록 작성과 자유발언 순서 참여 신청도 가능하며 수요시위 주관을 원할 경우 미리 정대협으로 연락하면 된다. 가장 가까운 지하철역은 3호선 안국역(6번 출구)이며, 5호선 광화문역을 이용할 수도 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대부분의 우리나라 사람들은 일본군 ‘위안부’ 역사에 대해서 알고 있다. 하지만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일본군 ‘위안부’ 역사 내용은 극히 일부만 기술되어 있어 심층적인 역사사료를 접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그러나 조금만 관심을 기울여 인터넷 상의 역사 기록물, 언론매체에서 다룬 영상이나 기사들을 살펴본다면 과거에 일어난 만행이 얼마나 추악한 전쟁범죄였는지 새롭게 각성하게 된다. 그런 경험으로 수요시위에 나오게 되는 사람들이 많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이에 윤 대표는 “여러분들은 여러분들의 삶에서 각지의 정의를 바로 세우고, 평화를 바로 세우고, 통일이 되고 전쟁의 분위기가 만들어지지 않는 역사를 만들어 나가시기 바란다”고 했다. 이어 그는 “여러분들의 삶 곳곳에서 잊지 않는 것, 기억하는 것”을 당부하며 “삶 곳곳에서 여러분들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연구해주시고 함께해 주시기 바란다”고 덧붙였다.

수요시위에 참여한 진주교육대학교 수학교육과 3학년 오웅렬 학생은 “역사는 높은 신분의 영웅에만 의하여 변화되는 것이 아니다. 문제를 문제라고 말하는 할머니의 용기로 큰 변화의 씨앗이 생겨났다. 그 변화가 뒷걸음질 치지 않게 우리도 용기를 내겠다. 알게 된 이상 할 수밖에 없다. 비록 자본과 권력은 없으나 그보다 훨씬 강력한 무기로 무장하겠다. 그것은 바로 교육이다. 앞으로 우리 예비교사 한 명이 만나게 될 아이들은 천명 가까이 된다. 잘못된 역사관을 가지고 과오를 되풀이하는 사람이 더 이상 나오지 않게 노력하겠다”라고 당찬 포부를 밝혔다.

대학생으로 구성된 평화나비네트워크 학생들도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서, 그리고 남북통일 동북아 평화를 위해 나서고 있다. 평화나비네트워크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대학생 단체이다. 이 학생들은 평화나비 전국 8개 지역 400여명이 넘는 대학생들이 페스타를 진행했고 동아시아에 대해 토론하는 자리, 기자회견 등을 열었다. 최근에는 서울ㆍ경기ㆍ충청ㆍ부산ㆍ대구 등 각 지역에서 열흘 동안 총 35,251명의 서명을 받아 할머니들께 전달했다. 이 밖에도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영역에서 그림으로, 몸짓으로, 연극으로 역사를 알리고 바로 세우기를 호소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윤 대표는 “우리가 여론을 만드는 거죠. 여론을 만드는 건 여러분입니다. 여러분들의 입으로, 여러분들의 손으로, 글로 표현해 낼 때 그것이 국제사회를 움직일 수 있고 전쟁을 통해 나라의 이익을 만들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그게 우리들의 경고가 될 것이고 재발 방지를 위한 우리들의 약속이 될 것입니다.”고 전했다.

모두가 축제의 분위기에 젖어있던 광복절. 지난 25년 동안 그래왔듯, 여전히 할머니들은 ‘우리는 해방이 되지 못 했습니다. 우리는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이 길거리에 서지 않아도 되는 날, 그날이 우리에게 진정한 해방이고 우리와 같은 피해자가 다시는 생기지 않는 것이 우리에게는 우리의 인권회복입니다’ 라는 목소리를 외쳤다. 이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47명만이 생존해 있을 뿐이다. 마지막으로 김복동 할머니가 하셨던 말씀이 떠오른다.

“여러분, 좌절하지 맙시다. 여러분, 포기하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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