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울의 양팔
단상 하나. 필자는 출근 시 늘 학교 셔틀버스를 이용한다. 이전에는 만원 버스에 시달려 출근 전부터 지치기 일쑤였지만 셔틀버스를 타면서 쾌적하게 출근하게 되었다. 그런 필자에게 어느 날부터 눈에 띈 광경이 있었다. 정차 지점마다 버스에서 내려 학생들을 기다리는 운전기사님의 모습이었다. 시간에 맞춰 운행하셔야 하기에 여유를 갖기 힘드실 텐데도 그분은 항상 버스에서 내려 학생들을 기다리시고 버스를 놓칠세라 뛰어오는 학생들을 웃는 얼굴로 따뜻하게 맞아주신다. 학교에 도착한 후에도 하차하는 학생들에게 일일이 인사를 건네시거나 혹시 뭔가 두고 내리는 것은 없는지 세심하게 챙겨주시곤 한다. 얼핏 보면 사소한 일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누구나 한두 번은 그렇게 할 수 있다. 그러나 늘 변함없이 한다는 것은 무엇이든 결코 쉽지 않다.
단상 둘. 며칠 전 ‘생활의 달인’이라는 TV 프로그램을 우연히 보게 됐다. 주인공은 지방 어디에선가 육회비빔밥 식당을 운영하는 연세가 꽤 드신 아주머니였다. 프로그램이 거의 끝나는 때라 아주머니의 인터뷰가 자막과 함께 TV 화면에 막 비치고 있었다. “난 세상이 어려워도 죽을 힘을 다한다면 충분히 헤쳐나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난 다른 건 모르겠지만 육회비빔밥만은 자신 있어요.” 내 눈길을 끈 것은 그분의 비장한 표정이었다. 그 표정은 평생을 그런 마음으로 또 그런 자세로 살아온 사람만이 지을 수 있는 것이었다.
두 개의 단상에서 우리는 살면서 어떤 자세를 지녀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대답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아침 첫차부터 운행을 시작하시는 운전기사님도 무척 고되실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따뜻하게 맞아주시는 ‘배려’의 마음은 모든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든다. 배려는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를 지탱하는 중요한 덕목 중의 하나이다.
그렇다면 육회비빔밥을 만드시는 아주머니는 어떤가. TV에 비친 그분의 표정에는 세파를 오직 성실함 하나로 버텨온 강인함이 깃들어 있었다. 결국 성실함은 개인의 삶을 쭉정이 없이 영글게 만드는 원동력임을 그분의 표정이 말해주고 있었다. 배려와 성실. 배려가 타인을 향해 취해야 하는 자세라면 성실은 자기 자신에게 지켜야 하는 자세이다. 배려와 성실은 양쪽의 균형을 유지하는 저울의 양팔과 같다. 그리고 그 양팔은 자신과 타인의 삶을 가을철 누렇게 익은 벼이삭처럼 풍요롭게 만든다. 점점 사는 것이 각박해지는 시대이다.
삼포 세대, 오포 세대라는 흉흉한 말들도 익숙해진 지 오래되었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기본을 놓쳐서는 곤란하다. 내가 삶의 여러 가지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것은 보이지 않는 수많은 사람들의 배려 덕분임을 알고 매사에 감사할 때 그리고 힘들고 어렵지만 묵묵히 성실하게 나아가는 것만이 내 자신을 충실히 채울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자각할 때, 저울의 양팔은 균형을 잃지 않을 것이다. 그 균형으로 인해 우리의 삶은 더 단단히 영글 것임을 믿는다.
주민재(방목기초교육대학 인문교양)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