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개성 만점의 커플들이 있다. 동거 7년 차에 접어들었지만 결혼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놓고 티격태격하는 ‘베스’와 ‘닐’, 매번 헛물만 켜는 ‘지지’와 연애상담사로 나서도 될 만큼 도통한 ‘알렉스’, 그리고 잘생긴 외모와 젠틀한 매너의 유부남 ‘벤’을 중심으로 깐깐한 아내 ‘제닌’과 사랑이라면 물불 안 가리는 ‘안나’의 삼각관계가 있다. 이 밖에 사랑에 매달리지만 차이기만 하는 싱글인 ‘메리’와 ‘코너’가 있다.
자 그럼, 당신은 영화 속에서 가장 이상적인 커플 혹은 마음에 드는 이상형이 있는가? 필자와 함께 이 영화 시사회를 본 20명의 관객에게 물어보니 이상적인 커플은 없지만 마음에 드는 이성은 있다고 했다. 그는 바로, 실전으로 내공을 쌓은 연애 카운셀러 역의 알렉스다. 그럼 왜 하필 그를 꼽았을까? 분명한 건 이 영화에 등장하는 주요 남성 인물 중에서 가장 많은 연애 혹은 성관계를 경험한 이가 알렉스라는 것이다. 그를 지목한 요인 중의 하나가 그에게 자유분방함과 함께 순정파적인 기질도 다분히 있기 때문이라는 점이 다소 흥미롭다. 소위 쭉쭉 빵빵한 금발미녀들이 그를 유혹하여 성관계를 갖기도 하지만, 그는 결코 두 번 잠자리를 하지 않는다. ‘Just sex, no love’의 원칙을 지키는 알렉스. 허나 공교롭게도 그는 어느 남성도 거들떠보지 않는 지지에게 자상한 상담원 역할을 자청하고 심지어 그녀의 사랑을 얻기 위해 노심초사한다.
바로 이 점이 여성관객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 같다. 적절한 비유인지 모르겠지만, 한국에서 방영된 시트콤 <남자 셋 여자 셋>에서도 이와 유사한 경우가 있었다. 물론 그 드라마에 나오는 송승헌과 소지섭이 알렉스와는 달리 결코 바람둥이는 아니지만, 적어도 극 중에서 가장 잘 생기고 매너 좋은 남성이라 할 수 있다. 그러한 남성이 그에 걸맞지 않는 여성의 사랑을 얻으려고 힘쓸 때, 시청자들은 형용할 수 없는 묘한 쾌감을 느낀다.
한편, 이 영화에서 가장 거부감을 느끼는 남성으로 벤을 꼽는다. 영화가 시작되면서 관객들은 그의 정감 있는 목소리와 수려한 외모, 신사적인 매너에 호감을 갖지만, 아내와 연인을 향해 우유부단한 태도를 보이자 실망으로 돌아섰다. 특히, 다른 여자가 있다는 사실을 들킬까봐 연인을 옷장에 숨긴 채 바로 옆에서 아내의 요구에 못 이겨 사랑을 나누는 장면에서는 욕지거리가 입에서 맴돌 정도이다.
한마디로 벤은 겁쟁이로 불려도 될 만큼 소심한 남자다. 그런 유형은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에게도 결코 환영받지 못한다. 안나는 벤이 유부남인 줄 알면서도 그의 신사적인 태도에 반했지만, 그의 우유부단한 성격이 드러나자 실망하고 만다. 아내 제닌도 마찬가지였다. 호불호好不好를 명백히 하는 그녀는 변명으로 일관하거나 미지근한 답변으로 대하는 벤에게 일종의 모멸감마저 느꼈다. 이에 반해 지지와 알렉스는 서로 공통점이 있다. 적어도 자신의 감정을 상대방에게 진솔했으며, 자신이 한 말에 대한 책임을 졌다.
사랑하지 않는 누군가가 애정을 고백했을 때, 최대한 상대방에게 상처주지 않도록 해야 한다. 결코 고백한 사람보다 우위에 있는 게 아니라, 단지 그 사람이 자신을 좋아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이는 지지와 알렉스 커플을 염두하고 한 말이다. 자신이 어느 쪽에 서게 될 지 누가 장담 하겠는가. 사랑에는 결코 공식이 없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