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것도 안하고 있지만
더욱 더 격렬하게
전력을 다해 아무것도 안하고 싶다.
-김성민 단편시집「정신병은 아니에요」中에서
누구나 늪에 빠질 때가 있다
돌이켜 생각하면 좀 이상하다. 손에 아무 일도 잡히지 않는다. 그냥 가만히 있고만 싶다. 가끔 이럴 때가 있긴 했지만 2달 이상 증세가 지속된 건 처음이다. 지난 24년간의 짧은 인생을 돌이켜보면 나는 게으르긴 했지만 최소한 무책임한 사람은 아니었다. 하지만 최근의 나를 돌이켜보면 게으름을 뛰어넘어 무책임한 경지까지 이르러 주변인들에게 민폐를 끼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글의 제목인 ‘누구나 늪에 빠질 때가 있다’며 합리화 하는 것은 이기적인 일이라는 것도 알고 있지만 도저히 몸이 움직여지질 않았다. 원인을 생각해봐도 일, 사람, 사랑 등 복잡한 일들이 마구잡이로 얽혀있어서 생각하기 귀찮았다. 나도 스스로가 답답하지만 이런 감정을 나만 느끼는 것은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다. 최근 인터넷에서 사람들의 많은 공감을 얻고 있는 ‘아무것도 안하고 있지만 더욱 격렬하게 아무것도 안하고싶다’는 현재 필자의 심정을 정확하고 냉철하게 반영하고 있다.
그렇게 그저 하루하루 살아가던 중 네이버 웹툰 ‘Ho!’를 봤다. 이미 많은 매니아층을 형성한 웹툰이지만 간단히 설명하자면 일본 ‘2ch’라는 사이트에 작성된 게시물 중 하나를 작가 ‘억수씨’가 각색해 만든 작품으로 사지멀쩡한 평범한 남자 ‘원이’와 청각장애인 ‘Ho’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작품에서 남자 주인공 원이는 대학생 때 학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 중학생이던 ‘Ho’를 처음 만나게 되고(Ho는 3살 때 사고로 청각을 잃었다) 둘은 많은 일들을 겪으면서 결국 결혼하게 된다. 아무 생각 없이 만화를 한 화 한 화 보면서 남자주인공인 원이와 내가 참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원이 역시 일, 사랑, 사람 등 여러 가지 일들이 마구 얽히면서 알 수 없는 무기력에 빠졌고, 결국 다니던 회사도 내팽겨치고 집과 pc방을 몇 달동안 전전하는 모습이 그려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원이는 ‘나는 괴물이 아니다’는 말을 내뱉으며 다시 일어난다. 또한 부끄럽지 않은 인간이 되지 않으려 안간힘을 쓴다. 흔들릴 때도 많지만 결국 올바른 길로 나아간다. 그렇게 털고 일어난 원이는 현재 아직 직장은 구하지 못했지만 하루하루 부끄럽지 않은 인간이 되려고 노력하고 있고, 나이차가 많이 나지만 달달한 Ho와의 연애도 이제 막 시작했다.
나도 부끄럽지만 원이를 보면서 위로를 받았고, ‘괴물’이 되지 않을 힘을 얻었다. 다시 누구에게도 부끄럽지 않은 인간이 되기 위해 노력 할 것이고 동시에 웹툰 속 Ho와 원이의 사랑 또한 계속 응원할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