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강의 새 '문버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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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의 새 '문버드' 이야기
  • 구희주
  • 승인 2015.04.06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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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의 새 '문버드' 이야기

최근 한 출판사에서 새 책이 곧 나온다며 책에 들어갈 발문(일종의 소개 글)을 부탁해 왔다. 생태에 관한 책이라 흔쾌히 응했는데, 읽어보니 내용이 흥미로웠다. 북미와 남미를 오가는 철새에 대한 이야기였다. 붉은가슴도요라는 작은 새는 계절에 따라 이동하는 경로가 각기 다른 여러 아종(지역 종)이 존재한다. 그 가운데에서, 북미 맨 끝 캐나다 사우샘프턴에서 남미 맨 끝 파타고니아 지역을 오가는 '루파'는 이동 거리가 직선거리로 무려 1만 4000km나 된다.

미국과 캐나다, 아르헨티나 등의 과학자들은 이 장거리 이주 철새의 생태를 연구하기 위해 1995년, 다리에 인식표를 달았다. 나중에 새를 다시 발견했을 때 알아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당시 인식표를 달았던 새들은 수백 마리에 달하는데, 대부분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보이지 않게 됐다. 긴 이주 동안에 삶을 마쳤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단 하나, 오렌지색 인식표와 'B95'라는 번호를 단 수컷 루파 한 마리가 2010년대에도 계속 발견된 것이다. 거의 20년 가까이 산 백전노장이었다.

과학자들은 이 새가 매년 최소 2만 9000km를 날았으리라고 보고(이후 연구 결과를 보면, 실제로는 새들이 폭풍우 등을 피하느라 훨씬 더 멀리 돌아 이동했다), 일생 동안 비행한 거리를 계산했다. 그 결과 B95는 거의 달에 다녀와도 충분한 거리를 날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달을 다녀올 뻔한 놀라운 새라는 뜻에서, 이 새에게는 '달새(문버드)'라는 별명이 붙었다.

이제 과학자들은 매해 철새 조사를 나갈 때마다 문버드를 발견할 수 있을지를 고대하게 됐다. 발견하면 자신들의 모든 네트워크를 동원해 '문버드 발견!' 소식을 서로에게 타전했다. 문버드가 발견됐다는 소식을 들은 연구자들은 어느 위대한 발견보다도 기뻐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지상의 어떤 동물도 그렇게 오랜 세월 동안, 그렇게 힘들고 먼 거리를 끈덕지게 이동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문버드는 말 그대로 최강의 새가 됐다.

그렇다면 문버드를 제외한 나머지 루파를 거의 사라지게 만든 위협적인 요인은 무엇이었을까. 철새는 장거리 비행 중간에 잠시 쉬어가기 위한 중간 기착지가 필요하다. 루파의 경우는 미국 동부의 한 해변이었다. 루파는 이 해변에서 투구게가 낳는 알을 먹으며 기력을 차린다. 그런데 최근 투구게가 어부들의 집단적인 사냥 대상이 되면서 알이 줄었고, 루파가 먹을 먹이도 줄었다. 먹이가 줄면 자연히 중간 기착지로서의 매력이 떨어진다. 새들은 사라지거나 척박해진 중간 기착지를 버렸다. 하지만 새로운 먹이 공급처를 찾는 일은 매우 어렵다. 결국 급변한 지상의 환경 때문에,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철새는 한창때의 20%밖에 살아남지 못 했다.

한반도도 철새의 휴식지 즉 중간 기착지가 많다. 어김없이 철새 도래지로 유명한 곳들이다. 반면 유명한 개척지인 곳도 많은데, 문제는 이 둘이 자주 겹친다는 점이다. 걱정되지 않는가. 세상에서 가장 강인한 새인 문버드 B95는 이런 악조건조차 견뎠지만, 수백 마리 루파 중 한 마리의 예외적인 경우였을 뿐이다. 한반도의 큰기러기, 쇠기러기, 흑두루미에게도 그런 예외가 통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윤신영.jpg  윤신영 동아사이언스 기자 ashill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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