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와 늑대’라는 책이 있다. 영국 출신의 철학자 마크 롤랜즈가 쓴 책으로, 개인 줄 알고 늑대를 잘못 구입한 저자가 오랜 세월 늑대와 함께 살게 된 경험을 철학적 성찰과 함께 잔잔하게 풀어낸 작품이다. 사람 손에 길들여지지 못할 운명인 늑대와 동거하는 과정에서, 작가는 웃을 수만은 없는 경험을 많이 했다. 늘 집안을 엉망으로 만드는 터에 도저히 홀로 집에 둘 수 없어, 작가는 강의를 나갈 때마다 대학에 늑대를 데려가야 했다. 수업에 관심이 없던 늑대는 대개 학생들의 발 밑에서 얌전히 잠을 잤지만, 때로는 갑자기 일어나 길게 하울링(고개를 들고 ‘우우우’하며 우는 늑대 특유의 행동)을 하거나 누군가 싸온 도시락으로 돌진하곤 했다. 강의실은 한바탕 웃음바다가 되거나 난리가 났지만, 소란의 주범인 늑대는 전혀 관심 없다는 표정으로 다시 태평한 잠에 빠져들었다.
늑대를 키우는 게 가능할까. 늑대를 길들일 수 있느냐는 철학적 질문을 하려는 게 아니다. 마크 롤랜즈도 키웠으니, 늑대를 키우는 건 도전조차 못할 정도로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늑대를 구할 수만 있다면 말이다. 늑대는 적응력이 강한 최상위 포식자로, 극지 부근을 포함해 전 세계에 두루 퍼져 살고 있다. 롤랜즈가 영국에서 아기 늑대를 구입하게 된 것도, 늑대가 비교적 흔히 볼 수 있는 동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반도는 예외다. 멸종했기 때문이다. 한반도는 대형 육식 포유류가 씨가 마른 대단히 드문 지역 중 하나다. 최상위 포식자였던 호랑이와 표범은 20세기 초반에 거의 대부분 멸종해 중반에는 완전히 사라졌고, 곰도 극히 일부 개체를 제외하곤 사라졌다. 늑대의 운명도 비슷했다. 1980년에 마지막 야생 늑대가 발견된 이후로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다.
한반도에서 대형 육식동물이 사라진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일본의 야생동물 전문가 겸 작가 엔도 기미오에 따르면, 늑대는 100년 전까지 한 해에 100여 마리씩 잡히던 흔한 동물이었다. 1914년에 122마리의 늑대가 사냥 당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기록되지 않은 수까지 합하면 늑대의 수는 더 많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해에는 곰도 261마리가 사냥 당해, 지금은 보기 드문 곰도 과거에는 꽤 흔했던 것을 알 수 있다.
늑대가 사라진 이유는 다른 대형 육식동물과 같다. ‘해를 끼치는 동물을 없앤다’는 명목으로 조선시대부터 이어진 사냥과 서식지 파괴다. 안전하게 살고 싶고, 애써 키운 작물이나 가축이 피해를 입지 않았으면 바라는 것은 잘못이 아니다. 하지만 그 때문에 산과 들의 원래 주인이던 야생동물을 씨까지 말릴 필요가 있었는지는 의문이다. 더구나 인간도 피해를 입고 있다. 멧돼지나 고라니 등 대형 포유류의 수가 급증했다. 마을로 내려와 사람을 위협하거나 농작물을 망치는 일도 늘어나고 있다. 이들은 현재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에 의해 유해 동물로 지정돼 포획(사냥)까지 당하는 실정이다.
1990년대에 미국 옐로 스톤 국립공원은 비슷한 일을 겪자 멸종한 늑대를 다시 방사하는 실험을 했다. 결과는 대성공으로, 늑대가 넘쳐나던 초식동물(들소)의 수를 조절하고 숲을 회복시켰다. 최근 우리나라도 환경부가 늑대 복원을 검토하고 나섰다. 물론 우려도 있다. 몇 km를 가도 인가 한 번 만나기 어려운 미국과 달리, 한반도는 인구밀도가 높아 늑대와 마주칠 확률이 높다. 하지만 그렇다고 100년 전까지 이 땅에 살던 동물을 모른 척할 수만도 없지 않을까. 안전도 도모하고 공존도 가능한 묘안이 필요하다.
윤신영 동아사이언스 기자 ashill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