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미테이션 게임’과 튜링의 숨겨진 연구
상태바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과 튜링의 숨겨진 연구
  • 구희주
  • 승인 2015.02.25 13:3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과 튜링의 숨겨진 연구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이 개봉해 순항 중이다. 2월 말에 열린 제87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각색상도 받았다. 이미테이션 게임은 영국의 천재 수학자이자 비운의 역사 인물 앨런 튜링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다. 튜링은 제2차 세계대전에 참여해 독일군의 암호를 해독하는 빼어난 성과를 내 연합군의 승리를 이끈 전쟁의 영웅이었다. 하지만 그의 개인사(동성애)를 범죄시한 당시 영국은 그에게 굴욕적인 처벌(화학적 거세형)을 내렸고, 튜링은 끝내 자살로 생을 마감해야 했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만으로 그를 기억하기엔 아쉬움이 많다. 암호학과 비극적 개인사 말고도 이야기해야 할 업적이 많기 때문이다. 우선 튜링은 현대 컴퓨터의 이론적 기초를 세운 선구자다. 그는 ‘자동기계’라는 개념을 세웠다. 자동기계는 계산을 한 단계씩 순차적으로 처리할 수 있도록 고안한 장치로, 지금의 컴퓨터와 원리가 같다. 이 기계에는 나중에 튜링의 이름을 딴 ‘튜링 기계’라는 이름이 붙었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튜링의 동물무늬에 대한 연구도 빼놓을 수 없다. 얼룩말의 호쾌한 줄무늬, 치타의 점무늬, 기린의 다각형 무늬가 왜 생기는지에 대해 많은 학자들이 오래 전부터 궁금해 했다. 하지만 유전학자도, 털의 성질을 연구한 생물학자도, 화학자도 그 원인을 밝혀내는 데에는 실패했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수학자인 튜링이 무늬를 만드는 원인을 밝혀 낸 것이다.

튜링은 동물의 태아 때부터 피부에 존재하는 화학 물질이 서로 상호작용한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얼룩말을 포함해 대부분의 동물의 줄무늬는 ‘멜라닌’이라고 하는 색소에 의해 나타난다. 이 색소는 인류의 피부색도 좌지우지하는 만능 색소다. 그런데 이 색소가 피부에서 나타날 때는 약간 복잡한 일이 벌어진다. 마치 세력을 뻗어 나가려고 하는 장수(멜라닌이 있는 검은 털)와 이를 막으려고 하는 외부 세력(흰 털)이 서로 적대적으로 대립하는 것 같은 현상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검은 털은 영역을 넓히려고 한다. 반면 흰 털은 이런 검은 털의 확산을 막으려고 한다. 마치 바둑을 둘 때처럼, 세를 넓히려는 세력과 이를 막으려는 세력 사이의 한 판 전쟁이 벌어지는 것이다.

이 두 세력을 다스리는 사령관은 화학물질이다. 넓게 퍼지려는 화학물질은 이를 막는 화학물질과 부딪혀 전선을 이룬다. 튜링이 수학적으로 예견한 이 전선은 두 명의 구소련 화학자에 의해 사실로 밝혀졌다. 이들의 발견을 이론화한 ‘벨로소프-자보틴스키 반응(일명 BZ 반응)’에 따르면, 물질의 화학 반응은 언제나 안정된 평형 상태로 끝나는 게 아니라, 오랜 시간에 걸쳐 격렬하게 요동치며 변화할 수도 있다. 얼룩말의 줄무늬와 치타의 점무늬는, 바로 이런 격렬한 화학반응이 잠정적으로 그은 휴전선인 것이다.

튜링은 1952년 영국 왕립학회 논문을 시작으로 동물무늬의 비밀을 본격적으로 파헤치기 시작했다. 흥미로운 연구가 많이 나올 것으로 기대됐지만, 아쉽게도 연구는 더 이어지지 못했다. 같은 해 6월, 42번째 생일을 불과 보름 앞두고 튜링은 자신의 침실에서 의문의 시체로 발견됐다. 경찰은 튜링이 베어 문 사과에서 독인 청산가리가 발견됐다며 자살이라고 결론지었다.

생활의발견1.jpg생활의발견2.jpg생활의발견3.jpg

△여러 동물들의 무늬

출처/네이버


 

 

 

윤신영 자르기사진.jpg 윤신영 동아사이언스 기자 ashilla@donga.com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 인문캠 :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거북골로 34 (명지대학교) 학생회관 2층
  • 자연캠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명지로 116 학생회관 2층
  • 대표전화 : 02-300-1750~1(인문캠) 031-330-6111(자연캠)
  • 팩스 : 02-300-1752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승환
  • 제호 : 명대신문
  • 창간일 : 1954년 11월
  • 발행인 : 유병진
  • 편집인 : 송재일
  • 편집장 : 한지유(정외 21)
  • 디자인·인쇄 : 중앙일보M&P
  • - 명대신문의 모든 콘텐츠(영상, 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명대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jupress@hanmail.net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