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서바이벌가이드의 올바른 사용법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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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서바이벌가이드의 올바른 사용법 (3)
  • 구희주
  • 승인 2014.12.13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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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마문화상 소설 부문 당선작> 좀비서바이벌가이드의 올바른 사용법 (3)


3. 안전한 피난처를 준비하라

 

피난처는 좀비의 지치지 않는 공격을 막아낼 정도로 튼튼해야 하고, 그 이전에 좀비 눈에 띄지 않도록 은닉해있어야 한다. 식량과 각종 물품을 비축할 만큼 넓어야하고, 배설물을 처분할 수단이 마땅한 곳이면 더욱 좋다. 믿고 마실 수 있는 수원은 필수 중의 필수다. 관리되지 않는 수도나 저수탱크는 금방 수질이 안 좋아지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자연의 것이어야 한다.

사실「좀비서바이벌가이드」의 피난처 부분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생각한 떠오른 장소가 있다. 도시 외곽에 돌 부처상으로 조금 유명한 산이 있는데, 그중 잘 알려지지 않은 등산로 중턱에 산장 하나가 있었던 것이다. 내가 중학생시절 친구들과 올랐을 때부터 이미 버려진 듯한 곳이었지만, 건물만은 튼튼하게 지어져 있었다. 집에서 자전거로 갈수 있을만한 거리이고, 근처에 작은 샘이 흐르고 있으니 그만한 곳이 없었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산장이 내 소유가 아니라서 평상시에 미리 안쪽에 물건을 재어놓을 수가 없다는 점이었다. 결국 보류로 한 채 다른 후보지도 준비해둘 수밖에 없었다. 무기와 식량은 인터넷으로 해결했지만, 은신처의 문제만큼은 직접 발로 뛰어야 했다. 어쩔 수가 없었다.

 

휴일마다 가까운 은신처 후보지를 조사하던 중, 또 하나의 뉴스를 접했다. 2012년 6월 29일, 중국에서 미국에서의 사건과 비슷한 일이 또 일어난 것이다. 20대 청년이 같은 나이대 여성을, 이번에도 똑같이 얼굴부분을 물어뜯었다. 그리고 역시 경찰의 제지에도 미동도 하지 않았다. 남성과 여성은 그 뒤 다시는 매스컴에 나오지 않았고, 중국당국은 남자가 만취해서 일어난 일이라고 둘러댔다. 차라리 미국과 같은 마약사건이라 했다면 신빙성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종말론자들의 의혹은 깊어졌다.

사태는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바이러스는 벌써, 미국에서 중국으로 단 한 달 만에 도달한 것이다. 교통망이 발달한 지금은 물리적 거리보다는 교통편이 전파에 훨씬 많은 영향을 준다. 미국과 중국은 그런 의미에서 가깝다고도 볼 수 있지만, 그래도 한 달이라는 속도는 놀라웠다. 나는 더욱 서둘러야 했다.

 

도시 주변에는 도저히 맞춤한 곳이 없어서 차츰차츰 범위를 넓히다보니 어느새, 시골 주변으로까지 범위를 넓힌 상태였다. 구글 지도로 이곳저곳을 기웃거리고, 적당하다 싶으면 주말에 직접 찾아가곤 했다. 본의 아니게 전국 곳곳을 돌아다닌 꼴이 되어버렸고, 덕분에 장롱면허가 조금이나마 제 역할을 하게 되었다. 물론 사태가 일어나면 자동차는 완전히 무용해진다. 한국은 국토대비 자가용의 비율이 높은 나라다. 어느 한군데에 사고가 나고, 그리고 그 사고를 정리할 국가가 마비상태이기만 해도 도로는 무용지물로 변하고 만다. 특히나 시골에서 시골로 간다면 모를까, 도시의 도로를 빠져나간다는 것은 거의 기적일 것이다.

모니터로 지도를 살피다, 한숨 돌릴까 싶어 고개를 돌렸다. 거기에는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달본이 놓여 있었다. 마침 지도를 보던 중이라 새삼 다르게 보였다. 달본 표면에는 아폴로들이 착륙한 장소가 아주 자그마한 글씨로, 그런 주제에 눈에 띄는 빨간색으로 적혀 있었다. 「좀비서바이벌가이드」에서, 좀비로부터 가장 안전한 장소는 극지방, 즉 남극과 북극주변이라고 했다. 사람이 적다는 것은 곧 좀비가 적다는 말과 같다. 오히려 극지방에서 싸워야 할 상대는, 혹독한 자연이다.

그 말을 그대로 적용하면 달 표면이야말로 좀비로부터 가장 안전한 장소가 된다. 진공에 가까운 대기상태와, 지구의 1/6에 지나지 않는 중력만 해결한다면 말이다. 잠시 생각하다가, 다시 모니터로 눈을 돌렸다. 더 이상 달에 대한 생각은 무용했다. 좀비의 위험이 0%인 장소는 동시에, 갈수 있을 확률이 0%라는 것과 마찬가지였으니까.

 

결국 처음 생각했던 버려진 산장을 은신처로 삼기로 했다, 산장 안쪽에 물건을 재어놓는 대신, 무거운 물건들은 밀봉해서 미리 주변 땅에 묻어놓았다. 그리고 틈틈이 지형을 살피고, 건물을 보수할 계획을 세웠다. 지금 보수할 수는 없지만, 계획만이라도 짜 놓으면 사태가 일어났을 때 빠르게 대응할 수 있을 테니까. 벌써 날짜는 7월 중순을 지나고 있었다.

 

4. 미리 체력을 길러라

 

유사시에 내 몸 하나를 건사할 체력이 없다면, 지금껏 준비한 모든 것이 허사가 된다. 배낭을 메고 오래 이동할 수 있는 지구력과, 조금 부족하게 먹고 마셔도 움직일 수 있는 기초체력, 좀비와 격투를 벌일 순발력과 근력은 필수중의 필수인 것이다. 다행히, 따로 운동을 다닐 필요는 없었다. 버려진 산장아래까지 자전거를 타고 가고(전에 말했듯이 사태가 일어났을 때 자동차는 좋은 수단이 될 수 없다. 오히려 좁고 거친 길을 갈수 있고 연료도 필요 없는 자전거가 훨씬 더 효율적이다), 산장까지의 산길을 오르면 체력은 자연히 길러졌다. 등에 멘 등산용 가방 안에는 비상식량이나 보수자재 등, 산장 주변에 은닉해놓을 것들로 꽉 차 있었다. 그것들을 돌을 옮겨 은닉하거나, 땅에 파묻거나 해야 하는 탓에 근력 운동을 할 새도 없었다.

 

암은 세포가 변이를 일으켜, 사멸하지 않고 무한히 분열·성장하면서 나타나는 질환이다. 죽지 않으면서 그 수를 계속 불려가는 이 끔찍한 질환은 이상하게도 문명이 발달하면 할 수록 발병빈도도 따라서 늘어갔다. 마치 현대인의 질병이라는 느낌인데, 사실 암의 씨앗은 이미 천만 년 전 서아프리카 지방을 휩쓸었던 레트로바이러스가 원인이다. 당시 레트로바이러스에 감염된 인류의 조상의 유전자가 오늘날의 대부분의 인간에게 잠재되어 있는 것이다. 모든 세포는 잠재적으로 암세포가 될 자질을 갖고 있다. 암은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안에서 오는 것이다.

 

날씨는 서서히 더워져서, 눈치채보니 이미 한여름의 날씨였다. 사태가 일어난다면, 적어도 여름까지 버티기만 한다면 좀비들은 전부 이 높은 기온에 썩어 문드러질 것이었다. 게다가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지형은, 도시 내부의 좀비가 밖으로 못나가게 하는 동시에 외부의 좀비가 들어오지도 못하게 하는 일종의 장벽과도 같았다. 아니, 그렇게 간단해지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도시에서 멀리 떨어지지 못한다는 일말의 불안에 대한, 약간의 위로는 되었다.

 

런던 올림픽의 개회식이 성대하게 열렸다. 2012년 7월 27일의 일이었다. 그 순간만큼은 나도, 좀비를 잊고 맘 편히 즐기고 있었다. 그런데, 해설자가 뜬금없이 말했다. 개회식의 총 감독이 대니 보일이라고. 대니 보일. 런던이 좀비에 의해 폐쇄된다는 내용의 영화 ‘28일 후’로 유명해진 감독이었다. 여기서도 좀비인가. 황당하면서도 끈질긴 인연이었다. 그런데, 상황은 그리 간단하지 않았다. 조사해보니, 런던 올림픽은 그야말로 상징과 암호로 점철되어 있었다.

런던 올림픽의 마스코트는 둘, 웬록(Wenlock)과 맨더빌(Mandeville)이다. 이름을 나누어보면, Wen lock과 Man deville이 된다. 영국인들이 런던을 흔히 Wen이라 부른다고 하니, 마스코트의 이름에 런던을 잠근다는(lock한다는) 의미가 있는 것이다. 무엇 때문인지는 두 번째 마스코트가 말해준다. Man deville. Le를 빼면 Man devil, 즉 악마이면서 사람인 무언가로 인해 런던이 폐쇄된다는 은유를 하고 있는 것이다.

올림픽 개막일인 7월 27일의 “28일 후”는 8월 23일이다. 23일. 하필이면, 개막식의 시작을 알린 종소리는 유럽에서 가장 크다는 23톤짜리 종에서 울려 퍼졌다. 아니, 과연 하필이면일까. 8월 23일에 분명 무언가가 일어난다, 그런 경종(警鐘)이 아닐까. 나는 확신했다.

 

3일 뒤인 2012년 7월 30일, 중국에서 40대 남성이 자신의 10대 아들을 물어뜯는 사건이 일어났다. 6월 29일 중국에서 있었던 사건은 절강성, 그리고 이번의 사건은 강소성이었다. 사건은 확실히 조금씩 북쪽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2012년 8월 23일 런던은 평화로웠고, 대한민국 헌법재판소는 인터넷 실명제에 대해 위헌 판결을 내렸다. 나는 준비를 계속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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