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서바이벌가이드의 올바른 사용법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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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서바이벌가이드의 올바른 사용법 (2)
  • 구희주
  • 승인 2014.12.13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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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마문화상 소설 부문 당선작> 좀비서바이벌가이드의 올바른 사용법 (2)

2. 식량을 비축하라

 

처음부터 좀비들이 분노에 찬 식인귀들이었던 것은 아니다. 처음의 좀비는 단지 아이티의 민간전승에 나오는, 영혼을 빼앗긴 채 부려 먹히는 노예에 지나지 않았다. 착취당하는 좀비와 착취하는 인간의 관계를 역전시킨 것이 조지 A 로메로 감독의 Night of the Living Dead,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이라는 영화였다. 지금의 좀비를 확립한 최초의 좀비영화이기도 하다. 사람의 생살을 뜯어먹는 시체들에 둘러싸인 채 대형 마트에서 농성을 벌이는 사람들은 이제 곳곳에서 자주 등장하는 단골소재가 되었다. 마트는 도시에서 가장 쉽게 식량을 구할 수 있는 곳이니 딱히 기발한 생각은 아니다.

하지만, 사실 사태가 일어났을 때 마트는 도시에서 가장 위험한 곳이나 다름없다. 당신이 기세등등하게 마트로 달려갔을 때, 그곳은 이미 같은 생각을 한 많은 사람들로 북적일 것이고, 사람과 좀비 모두 자기 입맛대로 골라가며 먹을 것을 챙기는 중일 것이다. 대형마트는 넓은 출입구, 유리문, 주차장과 물류입하장 등 방어에 불리한 점 투성이인 곳이다. 마트에 가려면, 그곳에서 농성하던 사람들이 전부 좀비의 식량이 된 후 한참 뒤에나 가는 게 나을 것이다.

아이티는 아직 발전할 곳이 많은 목가적인 나라이다. 한적한 시골에서 묵묵히 할 일을 하던 좀비가, 60년대 자본주의의 첨단이던 미국에서 돌연 분노에 찬 봉기를 한 원인은 아직까지 의견이 분분하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곧 일어날 창궐하는 좀비들에게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상하지 않는 대량의 식량이 필수라는 점이다.

 

냉장고 안에 남아있던 나물을 비벼먹으면서, 참기름으로 화염병을 만들 수 있을까 생각해봤다. 유통기한이 일 년 남짓한 참기름은 보존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으니, 무기로라도 유용하게 사용하는 편이 낫기 때문이다. 몇 번 실험해보면 알 수 있었겠지만, 아쉽게도 한국에서 화염병 소지는 엄연한 불법이다. 아니, 사실은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겠지만. 준비는 아무리 해도 부족하다. 사태는 항상 주시해야하고, 밥을 먹는 와중에도 무기를 생각해야 한다. 그게 생존에 대한 기본적인 자세다. 화염병은 아쉽지만, 대충 제조법 정도만 기억해놓기로 했다. 만약 사태가 일어난다면, 싫어도 저절로 익숙해질 테니까.

 

먹을 것이 없는 사람은 조급해지고, 그래서 때로는 난폭해지기도 한다. 좀비에게 죽는 사람이 많을까, 사람에게 죽는 사람이 더 많을까. 확실한 것은, 좀비는 기껏해야 사람을 먹기만 하지만, 사람은 여러 가지를 할 수 있다는 점이다. 협박하거나 강간하거나 노예로 삼거나 죽이거나, 그리고 때에 따라선 먹기도 한다. 항상 일관된 모습을 보이는 좀비와 다르게, 사람은 환경에 따라 하는 행동이 크게 좌우된다. 좀비사태가 일어난 환경에서 사람이 하는 행동은 평소와는 많이 다를 것이다.

좀비사태가 점점 확대되면, 빌라나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수돗물조차도 안심할 수 없게 된다. 좀비에 감염되었지만 아직 살아있는 사람들은, 자신이 보유한 바이러스가 언제 자신을 좀먹을지 불안할 것이다. 그 불안감은 감염자에게 돌발행동을 일으키게 하고, 그중 몇 명은 저수탱크에 몸을 던질지도 모른다. 에이즈 감염자의 헌혈, 매춘처럼 나쁜 일은 나누려는 사람은 항상 있다. 어차피 사태가 일어나면 당장 집을 떠나, 지금부터 마련할 피난처로 갈 예정이었다. 피난처의 조건에 한 가지 추가되었다. 안전한 식수원이 있을 것.

 

그러던 중 좋은 방법이 떠올랐다. 당연한 사실이지만, 물을 끓여 먹으면 훨씬 더 안전하다. 어차피 물을 끓인다면 그 끓인 물에 영양을 추가할 방법이 있지 않을까, 해서 떠오른 것이 바로 메주다. 메주는 소금물을 이용하면 간단하게 된장으로 만들 수가 있는데, 된장에는 단백질과 탄수화물이 풍부하게 들어있다. 둘 다 중요한 필수영양소이다. 게다가 메주는 유통기한이 없다. 오래 놔두면 맛이 떨어지기는 하겠지만 먹기에는 아무 부족함이 없는 것이다. 특히 청국장은 전쟁 시에도 2,3일 가공을 통해 쉽게 만들 수 있었기 때문에 고구려시대 때부터 이용된 전투식량이었다. 그 효용성은 역사가 말해준다. 당장 시골도매를 이용해 메주를 두 덩이 주문했다. 메주마다 가격이 많이 달랐다. 두 덩이에 육 만원이 조금 넘었다.

 

메주만으로는 부족했다. 오랜 기간을 된장물로만 버틸 수는 없는 것이다. 나는 아웃도어 동호회에서 ‘긴급식량 275명 분’ 이라는 상품명을 찾았다. 미국 코스트코에서만 판매한다는 이 제품은 보존기간이 무려 20년, 한 봉지에 다섯 끼니를 해결할 수 있고, 그것이 쉰다섯 봉지나 들어있어서 비상식품의 정석과 같은 제품이었다. 전체의 크기가 고작 일반 양동이 정도인 것도 마음에 들었다. 가지고 다니기에는 거추장스러울 테지만, 봉지 낱개로 가지고 다닌다면 그리 큰 문제도 아니었으니까. 한국에서는 팔지 않아서, 나는 이베이에 물건을 주문했다. 왜 한국에선 팔지 않을까. 우리나라는 지금도 전쟁 중인, 휴전국가인데, 툴툴거리며 말이다.

나는 약간 무리해서 두 양동이를 주문했다. 기본적으로 나 혼자 살아남기 위한 준비였지만, 가능하다면 가족의 몫도 챙기는 게 낫지 않을까. 도착하기까지는 조금 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비용은 십이 만원이 조금 넘었다.

 

몇 주 뒤, 피난처를 알아보고 있던 중에 ‘긴급식량 275명 분’이 도착했다. 시험 삼아 한 봉지 뜯어 설명에 적힌 대로 조리해봤다. 모두 영어로 적혀 있었지만, 물에 섞어 중불로 30분 끓이라는 설명정도는 알아볼 수 있었다. 마카로니가 섞인 붉은 수프, ‘같은’ 것을 한번 먹어봤다. 역시, 긴급식량답다는 느낌이었다. 나는 남은 4.5인분을 개수대에 버리고, 긴급식량은 긴급할 때에만 먹어야겠다고 다짐했다. 7월 초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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