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적 사랑 VS 잘 포장된 불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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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적 사랑 VS 잘 포장된 불륜
  • 이재희
  • 승인 2009.09.13 14: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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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성문화 여행

영화 <제독의 연인>은 1차 세계대전과 러시아혁명이라는 격동의 시대 속에서 살았던 러시아 마지막 제독 ‘알렉산드르 코르챠크’의 운명적인 사랑을 다루고 있다. 사실 전쟁이나 재난과 같은 극한 상황을 극복한 사랑 이야기는 흔한 소재임에도 많은 사랑을 받아 왔다. 태평양 전쟁을 소재로 한 <진주만>도 그랬고 타이타닉호 침몰사건을 소재로 한 <타이타닉>도 그랬다.

그러나 이보다 훨씬 진한 감동과 인간애가 느껴지는 작품이 있는데, 바로 러시아에서 제작한 <제독의 연인>이다. 앞서 언급한 작품들의 주인공이 가공인물인 반면, 이 영화는 실존인물을 바탕으로 아주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따라서 영화 속 남녀 주인공의 갈등과 목숨 건 사랑은 관객들에게 강한 설득력을 전하고 있다.

이 영화는 노인이 된 안나 티미료프가 과거의 일을 회상하는 방식으로 시작한다. 두 남녀가 처음 만난 1915년부터 그가 총살형을 당한 1920년까지의 만 5년 기간을 집중적으로 조명하는 <제독의 연인>. 놀라운 점은 안나가 코르챠크와 함께 보낸 시간이 단 2년에 불과했지만, 그 사랑이 그녀의 나머지 인생 전체를 지배했다는 사실이다. 즉 그녀는 반역자의 연인이라는 죄목으로 무려 30여년이나 수감되어 있었다.

안나는 신념이 아주 강한 여성이었다. 만일 그녀가 평범한 성격이었다면, 연인이 총살당한 상태에서 그토록 오랜 기간 수감생활을 견딜 수 있었을까. 극도의 좌절감과 외로움을 잊기 위해 자살하거나 혹은 정신을 놓아 버릴 수도 있다. 그러나 그녀는 장구한 세월동안 그 침침하고도 음습한 장소에 갇혀 있으면서 연인을 추모하는 편지와 시를 썼고, 출감하고서도 그를 그리워하며 생을 마쳤다. 더욱이 생전의 코르챠크에게 보낸 총 53통의 연애편지는, 그 내용이 공개돼 영화제작의 모티브로 사용되었다.

짧지만 강렬했던 운명적인 사랑! 그러나 이 영화를 본 관객들의 반응은 그리 신통치 않았다. 그럼 필자의 예상보다 좋지 않은 반응이 나온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아마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그 중의 하나가 관객이 할리우드영화에 너무 익숙한 탓이 아닐까 싶다. 만일 이 영화가 미국에서 만들어졌다면 정사신이 나오거나 최소한 농도 짙은 키스신이 나왔을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러시아에서 제작했으며, 배우 또한 러시아인이다. 따라서 우리에게 낯익은 미국이나 서유럽이 아닌, 보수주의적인 러시아식 성 관념이 장면마다 곳곳에 드러난다. 그 결과, 영화 속 두 남녀의 사랑은 지고지순을 넘어서 답답한 인상을 받게 했다. 더욱이 코르챠크가 감정을 제어하기 위해 한동안 그녀에게 무표정한 태도로 일관한 것에 대해서 몇몇 관객은 짜증이 난다고 했다.(코르챠크의 원래 성격이 포커페이스라는 별명을 지닐 정도로 무뚝뚝하다) 하긴 요즘이 어떤 세상인가. 일단 필이 꽂히면 곧장 행동으로 나서고, 정기적 혹은 부정기적으로 연인을 위한 이벤트도 열곤 하지 않은가.

영화 속 사랑을 결코 좋게 볼 수 없는 또 다른 중요한 이유가 있다. 바로 안나와 코르챠크의 관계가 ‘불륜’이라는 것. 물론 안나는 이혼을 하고 코르챠크도 처자식을 외국으로 보낸 후 본격적인 만남이 시작됐지만 영화 속 사랑이 아무리 운명적이라 할지라도 아름답게만 간주할 수도 없다.

소피아와 베트로프 두 사람 모두 가정을 지키려 노력했으나 아무런 잘못도 없이 배우자를 빼앗겼다. 아이까지 있는 상황에서 남편 없이 홀로 지내는 소피아나 아내가 평소에 존경하던 상관과 바람이 나서 남편을 거들떠보지 않았을 때의 좌절감과 분노를 생각해보라.

역사는 승자 중심으로 서술된다는 말은 영화 역시 마찬가지라고 본다. 두 주인공과는 달리 평생토록 한이 맺힐 소피아와 베트로프의 비중은 매우 적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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