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희 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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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희 서간
  • 이재희
  • 승인 2011.06.22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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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희 서간
편지는 사람의 내면을 살필 수 있는 자료이다. 특히 가족에게 보낸 편지에는 가식이 적어 그 사람의 진솔한 마음을 엿볼 수 있다. 우리박물관에는 추사 김정희(1786∼1856) 편지가 있다. 멀리 유배 가는 고난의 처지에서 동생에게 보낸 그의 이[‘이’자 생략] 편지를 한번 살펴보자.
이 편지는 철종 2년(1851) 윤8월 2일에 유배지인 함경도 북청에 도착하여 동문 밖에서 관청의 조치를 기다리며 동생에게 보낸 것이다.
편지의 내용을 보면 “11일과 12일 사이에 회양에서 보낸 편지는 잘 받았는가?…큰물을 무릇 28곳이나 건넜고, 여간 소소한 물은 일일이셀 수도 없구먼”이라 하여 귀양길의 어려움을 그대로 전하고 있다.
또 “마음이 황망하고 행동이 급박하여 일을 도와줄 계책 하나 없이 천리나 떨어진 변방에서 헛된 생각만 할 뿐 전혀 간섭할 방법이 없으니 이 무슨 꼴이란 말인가”라고 한탄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어찌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이었겠는가. 역시 임금님의 보살핌일 뿐이지!”하며 상황을 달관해 가는 고수의 내공이 보인다. 편지는 “신해(1851년) 윤8월 초2일 귀양 가는 큰형(伯累)”이라 끝맺고 있다. 그럼 추사는 왜 북청으로 유배 됐을까?
1849년 조선 24대왕 헌종이 서거하고 강화도령이라 일반에게 알려진 25대왕 철종이 즉위하였다. 그런데 철종은 사도세자의 작은 아들인 은언군의 손자로서 항렬 상 헌종의 9촌 아저씨이다. 이렇게 비틀어진 왕위계승은 많은 문제를 내포하고 있었다. 결국 헌종의 삼년상이 끝난 1851년(辛亥)에 잠복되었던 문제가 정치적으로 폭발하게 되는데 대표적인 사건이 ‘신해조천의(辛亥?遷議)’이다. 즉 헌종의 신위를 종묘의 정전에 봉안하기 위해서는, 기존에 모셔져 있던 현재 왕의 5대조를 정전에서 영녕전으로 옮겨야 한다. 이것을 조천(?遷)이라 한다. 이때 조천에 해당되는 분이 진종(영조의 큰아들)이다. 정조가 백부인 진종의 대를 이었으므로 철종에게 진종은 왕통(王統)으로는 5대조이고, 가통(家統)으로는 증조에 해당된다.
여기에서 진종의 조천이 타당한가를 두고 치열하게 논쟁한 것이 신해조천의이다. 이는 장동김씨파(조천론)와 반대파(불천론)의 정치적 투쟁이었으며, 결국 조천으로 결정되어 조천불가를 주장하였던 영의정 권돈인과 김정희 등이 탄핵된 사건이다. 이때 김정희는 물론이고 그 동생과 제자들까지도 벌을 받게 되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이때 철종이 “김정희의 일은 매우 애석하다마는…북청부로 멀리 보내고, 김명희ㆍ김상희는 향리로 추방하라. 오규일과 조희룡 두 사람은…한 차례 엄형하여 외진 섬에 정배하라….”라고 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유배지에 도착한 김정희는 북청부 동쪽의 자작나무로 만든 굴피집에서 힘들게 귀양살이 하였다고 한다. 1851년 9월 그와 절친한 후배인 침계(?溪) 윤정현(1793∼1874)이 함경도 관찰사로 부임한다. 이때 김정희는 윤정현에게 진흥왕 황초령순수비 보호를 건의한다. 이에 1852년 황초령 아래 중령진에 보호각을 지어 순수비를 이전복원하게 되고, 그 보호각 현판이 그 유명한 <진흥북수고경眞興北狩古竟>이다.
우리 박물관에 전시된 추사의 편지를 통해 한양에서 출발하여 함흥을 거쳐 함관령을 넘어 북청에 이르는 귀양길의 고난과 걱정, 원망, 그리고 세상을 달관해 가는듯한 추사의 마음을 엿볼 수 있다. 아울러 작성 날짜와 위치가 밝혀져 있어 북청 유배시절 추사글씨의 기준 작이 되는 귀중한 자료이다.
우유배달_추사편지.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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