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 최대의 성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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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9.09.01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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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성문화 여행>

 

<킨제이 보고서>: 세계 최대의 성보고서

감독 빌 콘돈은 영화 <킨제이 보고서>제작을 위해, 동물학자 알프레드 킨제이의 여러 저서를 통독하고 그의 가족 등을 직접 인터뷰하는 등 고증에 힘썼다. 그래서인지 이 영화를 본 첫인상은 상업영화라기보다 다큐멘터리에 가까웠다.

킨제이가 성연구가로 잘 알려진 계기는 영화에서처럼 성교육 강좌였다. 가벼운 마음으로 강의를 시작한 그는 학생들의 성지식이 거의 전무하거나 왜곡된 걸 확인하고 충격 받았다. 그는 기존의 종교이론 같은 강의 방식을 탈피해 실제 겪을 수 있는 성행태를 거침없이 표현했다. 또한 350문항의 인터뷰 기법을 개발했는데, 여기에는 남녀, 연령, 인종은 물론이고 실제 성행위 방식과 상상 속의 행위까지 포함시켰다. 이후 록펠러재단의 후원 속에서, 킨제이를 연구소장으로 하는 성연구소가 설립되었다.

<남성보고서>가 1948년 출간되었을 때, 미국 사회는 큰 충격에 휩싸였다. 순결, 외도, 성행위방식에 관한 인터뷰 결과가 대중의 예상을 너무도 벗어났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당시 정신질환으로 간주된 동성애를 경험했거나 원하는 남성만도 37%에 달할 정도였다. 그 후 출간된 <여성보고서>도 시중에 나오자마자 날개 돋친 듯 팔렸다. 이 저서가 출간된 1953년은 성인잡지의 대명사인 <플레이보이>가 창간된 해이기도 했는데, 이 잡지보다 무려 16배되는 가격에도 훨씬 많은 부수를 판매하였다.

그렇다면 <여성보고서>의 인기요인은 무엇이었을까? 그건 독자들이 여성의 성생활이나 성적 환상에 호기심이 있다는 점과 함께 그 내용이 <남성보고서>이상으로 충격적이었던 데 있다. 그리고 그러한 연구결과물이 나오게 된 배경으로 바로 킨제이 자신의 성행태 가치관을 지적할 수 있다. 즉, 그는 어떠한 생물학적 행동도 ‘비정상’으로 구분하기를 반대했으며, 그에 따라 소위 성도착性倒錯 혹은 변태행위도 용인했던 것이다.

그러나 호사다마랄까. 그의 저서가 불티나게 팔리는 것과 대조적으로 성적 타락을 부추긴다는 보수층의 비난도 격렬해졌다. 1950년대는 냉전체제이자 보수적인 가치관이 지배하던 때였다. 그러한 경직된 사회 분위기 속에서 킨제이는 자본주의체제 전복을 노리는 공산주의자로 몰리고 FBI 국장 에드거 후버의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연방수사관의 압력과 비난 여론에 시달린 록펠러재단은 킨제이에 대한 재정지원을 취소하기에 이른다. 이후 그는 연구자금을 얻기 위해 백방으로 뛰지만 실패하고 만다.

영화에는 킨제이 부부가 정답게 숲을 거니는 장면으로 끝을 맺고 있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그의 친구들의 증언에 의하면 킨제이가 흥분제와 진정제를 번갈아 복용하는 등 언뜻 봐도 정상인 같지 않은 모습이었다. 또한 그의 직접적인 사인死因이 피로로 인한 급성폐렴이지만, 그에 못지않게 연구지원이 중단된 지 2년 만에 사망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필자는 확언한다. 킨제이가 사망하게 된 가장 중요한 요인은 학자로서의 신념과 의지가 꺾인 데 따른 삶의 의욕 상실이라는 것을.

한편, 필자는 킨제이의 학자로서의 도전정신은 높이 평가하면서도 연구방식에 공감가지 않는 면이 있다. 그가 과학과 통계 수치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인간의 감정적인 면을 도외시했다는 것이다. 그의 관점에서 섹스는 감정이 배제된 동물적이고 감각적인 성행위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러한 가치관으로 인해 영화 속에서 제자인 연구원과 아내의 성행위를 용인하기도 했다. 즉, 그에게는 제자와 아내의 성관계가 도덕적인 잣대의 ‘불륜’이 아니라 ‘감정이 배제된 성행위’였다. 그러나 인간의 성행위는 킨제이의 연구 방식처럼 생물학이나 통계학의 산술적 수치로 결정할 수가 없다. 거기에는 분명 동물과 달리 ‘이성’, ‘윤리’, ‘절제’ 등 인간만이 지닌 품성을 고려해야 한다.

킨제이의 학문적 성과는 ‘여성해방운동’과 ‘동성애자인권운동’을 비롯한 성혁명이 분출된 1960년대에 들어서야 더욱 빛을 보게 된다. 그래서 혹자는 주장한다. ‘그가 1960년대까지 살았다면 좋은 세상을 만났을 텐데’

 


/역사학자ㆍ영화평론가 연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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