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부문 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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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부문 당선작
  • 방연식
  • 승인 2010.12.05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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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선물 받았다. 흐릿한 느낌을 주는 그림이었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지 않으면 가을풍경을 그린 것 같기도 했다. 싸구려 물감으로 아마추어 화가가 그린 것이리라 생각했지만 그녀는 그림이 상당히 비싼 것이라고 했다. 같은 회사에 다니는 동료일 뿐인 나에게 왜 이렇게 비싼 그림을 주냐고 묻자 그녀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이런 말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저희 언니가 얼마 전에 이혼을 했거든요….”

이혼한 그녀의 언니는 언제부터인가 남편이 그림을 가져오는 것을 이상하게 여겼다고 한다. 평소에 미술관 한 번 가본 적 없던 남편이었다. 알고 보니 남편은 바람을 피고 있었다. 상대는 큐레이터였다. 이혼을 하고 쫓기듯 집을 나간 남편은 그림을 챙겨가지 않았다. 찝찝하다며 그녀의 언니는 그림에 손도 대려고 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결국 본인이 그림을 처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사람이 비싼 그림이라고 했다더라구요. 저도 내키지는 않지만 없애버리기엔 아까워서요. 그렇다고 제가 가지고 있기도, 팔기도 좀 그래서요.”

얼마나 그림이 많으면 별로 친하지도 않은 나에게 그림을 주냐 묻고 싶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친하지 않기 때문에 그림을 줬겠구나 싶었다. 고개를 끄덕이며 그림을 받아 들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비싼 그림은 아니지 싶었다.

낡은 집 앞에 젊은 여자와 늙은 남자가 나란히 서있다. 집 뒤로 붉게 노을이 지고 있다. 여자는 두 손으로 큰 물고기를 들고 있다. 미소를 짓고 있지만 어딘가 씁쓸해 보인다. 남자는 낚싯대와 양동이를 들고 있고 무표정으로 여자를 바라보고 있다. 그림은 그게 전부였다.

그림의 제목도, 화가의 이름도 몰랐다. 내가 묻기 전에 그녀는 말했다.

“제목도, 화가도 모르지만 이름 없는 화가가 그린 건 절대 아닐거에요. 그 사람이랑 바람피운 여자가 꽤 유명한 미술관에 다녔거든요.”

유명한 미술관에 다닌다고 유명한 그림을 맘대로 누군가에게 줄 수 있는 걸까? 적어도 아무것도 아닌 그림을 주지는 않았을 거라는 게 그녀의 생각이었다. 나는 그녀의 생각에 동의할 수 없었지만 반박할 필요도 없었다.

처음으로 벽에 뭔가를 걸어보는 거였다. 하다못해 달력 한 번 걸어본 적이 없었다. 어릴 적 친구 집에 놀러 가면 벽에 온갖 포스터들이 붙어있었다. 좋아하는 연예인이나 영화 포스터 따위였다. 어린 나는 좋아하는 연예인도 없었고 직접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본 적도 없었기에 벽에 붙여진 사진들이 그저 거추장스러웠다. 그렇다고 그림을 거는 것까지 거추장스러워보였던 것은 아니었다. 나도 몇 번 마음에 드는 그림을 봤었고 사려고까지 해봤다. 하지만 늘 사기직전까지 오면 이 그림이 정말 괜찮은 그림일지, 화가가 정말 유명한 사람인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화가의 명성에 비해 그림이 너무 비싼 것은 아닌가? 먼 훗날 그저 쓸모없는 그림이 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들이 머리 속에 가득 찼다. 더 생각해보고, 나중에, 하다보면 어느새 그림은 머리 속에서 잊혀져 내가 그림을 정말 사고 싶었던 것인가? 하는 의문까지 들었다. 그래서 벽은 늘 비어있었다.

당연히 그림을 어디에 걸어야 적당한 걸까, 라는 생각에는 도달해보지도 못했다. 나는 이 그림이 분명 어울리는 자리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적당한 자리가 어디일지는 알 수 없었다. 집에 들어왔을 때 제일 먼저 그림이 보이는 것은 너무 우울할 것 같았다. 노을이 지고 있는 그림. 그리고 그 속에 어색하게 놓여있는 두 남녀의 얼굴을 집에 돌아왔을 때 제일 먼저 보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너무 보이지 않는 곳에 두자니 그림을 뭐하러 벽에 걸어두나 싶었다. 차라리 창고에 넣어두는 게 나을 것이었다. 가끔씩 그림을 볼 수 있는 곳. 손님이 찾아 왔을 때 이 그림이 뭐죠? 물으면 그림으로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곳이 좋았다. 결국 그림은 식탁이 있는 벽면 옆에 걸리게 되었다. 가끔씩 불편한 누군가에게 식사를 대접해야 할 때 고요한 침묵 속에서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곳이었다. 단순히 그림이 어떻다가 아니라 그림에 대한 소소한 이야기를 할 수도 있었다. 가령 그림의 원래 주인에 대한 이야기 같은, 내 이야기가 아닌 남의 이야기를 아무렇게 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었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은 한 층에 일곱 가구가 사는 복도식 아파트였다. 그것은 한 층에 사는 이웃이 적어도 여섯 명은 넘는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이곳에 이사 온 날 후부터 한 번도 이웃을 본 적이 없었다. 우연히 마주쳐서 멋쩍게 인사를 나눠보지 못했다. 일부러 피한 것은 아니었다. 타이밍 이었다. 내가 사는 아파트 5층 사람들은 모두가 병적으로 타이밍을 못 맞추는 사람들이었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렇게 오랜 시간동안 단 한 번도 마주치지 않는 것을 설명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긴 시간 이웃을 보지 못하게 되자 차라리 우연히 마주치지 않는 것이 나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단순히 이웃이라고만 여겼던 사람의 얼굴을 마주보고 인사를 할까, 말까 망설이는 그 순간이 싫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렇게 닥칠 순간이 싫었다. 우리는 멋쩍게 하하, 몇 년 만에 처음이네요, 이제 또 몇 년 후에 보게 될까요? 라고 대화하게 되지 않을까. 이제 얼굴을 알게 되었으니 다음에 만날 때는 통성명이나 하죠, 하하.

 

“망치를 좀 빌릴 수 있을까요?”

그것은 몇 년 만에 처음만난 이웃과의 대화로는 어울리지 않았다. 다소 수줍은 말투로 내가 말했고 남자는 흔쾌히 그럼요, 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남자는 어딘가 급해보였고 문을 열고 나왔을 때도 허둥지둥하고 있었다. 그리고 남자는 한참 후에 망치를 들고 나와 말했다.

“이 정도 망치면 되겠죠? 더 큰 게 있기는 한데, 무거울 거 같아서요.”

“아무거나 괜찮아요. 감사합니다.”

나는 남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재빨리 문을 닫으려고 하는 것을 막으며 서둘러 말했다.

“저는 505호에 살구요. 얼른 쓰고 갖다 드릴게요!”

남자는 한 번 더 고개를 끄덕이고 얼른 문을 닫았다. 나는 남자가 닫은 문에 적힌 숫자를 읽었다. 507호. 507호의 문 앞에는 묵직한 쓰레기봉투 하나가 놓여져 있었다. 쓰레기는 늘 그 자리에 있었다. 쓰레기가 더미로 쌓이지 않는 것을 보면 분명 쓰레기를 버리기는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내가 볼 때마다 쓰레기는 늘 그 자리에 있었다. 507호에는 분명 너무 바빠서 쓰레기를 갖다 버릴 시간이 없는 사람이 살거나 혹은 지저분한 사람이 살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생각보다 말끔해보였다. 외모는 단정했으며 키도 훤칠했다. 그러나 말투와 행동이 너무 급해 보여 다소 방정맞다는 느낌이 들었다.

망치를 들고 집으로 걸어오며 506호에 붙은 전단지를 바라보았다. 507호에 늘 쓰레기가 놓여있듯 506호에는 늘 전단지가 붙어 있었다. 한 달 전부터였을 것이다. 전단지 때문에 506호라고 적힌 팻말이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나는 가끔 집에 밥이 없을 때 506호에 붙은 전단지를 하나씩 떼어가고는 했다. 문에는 종류별로 다른 음식들이 그려진 전단지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냉면집 전단지를 찾으려고 한참을 전단지를 들춰보기도 했었다. 언젠가는 중국집 배달원이 우리 집에 자장면을 배달하러 왔다가 506호에 붙은 다른 중국집 전단지를 다 떼어간 적도 있었다. 506호의 문에는 떼어간 전단지들의 공간이 비었지만 그 공간은 며칠이 지나지 않아 다시 채워졌다.

507호 남자가 쓰레기를 놓아두는 것처럼, 506호에 사는 누군가도 전단지를 붙여놓아야 마음이 놓이는 사람이거나 너무 귀찮아서 전단지를 떼지 않는 사람일거라고 생각했다. 아니면 나 같은 사람을 위해 배달음식 전화번호 창구라는 의미의 공간을 마련해 놨을 거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생각들보다 신빙성 있는 건 집이 늘 비어있었을 거라는 생각이었다. 망치를 빌리기 위해 506호의 벨을 눌렀을 때, 나는 아무도 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망치질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원하는 자리에 펜으로 살짝 점을 찍은 뒤 못을 가져다댔다. 망치로 몇 번 내리치면 못이 적당하게 박힐 것이라는 건 애초부터 틀린 생각이었다. 못은 들어가다가 옆으로 구부러져 쓸 수 없게 되기 십상이었다. 그렇게 몇 번이나 실패를 거듭하자 쓸만한 못이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 일단 밥을 먹은 뒤에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망치를 내려놓는데 벨이 울렸다. 507호 남자였다.

“죄송한데 망치 다 쓰셨어요? 제가 급하게 필요해서.”

남자가 너무 말을 빨리해서 급하게 라는 단어가 뭉개져 들렸다. 몇 초간 뭉개진 말의 의미를 생각했다. 그것이 급하게 라는 단어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그의 얼굴도 뭉개져 있었다.

“제가 아직 다 못해서…. 죄송해요, 얼른 드릴게요. 잠시만 기다리시겠어요?”

내가 문을 닫으려하자 남자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제가 도와줄 수 있으면 말하세요.”

또 몇 초간 남자가 한 말의 의미를 생각한 후에,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다. 한참을 그러고 있자 남자가 어중간하게 닫혀진 문을 활짝 열었다.

“그냥 제가 도와드리죠.”

남자는 허락도 없이 집으로 들어왔다. 남자가 무례하다고 생각했지만 내심 도와줬으면 했다. 내가 부엌으로 들어가 망치와 못을 건네자 남자는 아무 말도 없이 점이 찍혀진 벽에 못을 박았다. 남자의 망치질 몇 번에 못이 쑤욱 들어갔다. 와! 하고 탄성을 지르자 남자가 어깨를 으쓱했다.

“요즘엔 못 잘 안 박잖아요. 벽에 붙이는 것도 있을 텐데.”

“이런 거 엄청 잘 하시나 봐요.”

엄청 이라는 말에 남자가 움찔했다.

“엄청은 아니구요. 이런 일을 하니까요.”

남자의 얼굴을 살피니 남자의 표정이 아까보다 차분해보였다. 남자는 자신이 박은 못을 다른 각도로 찬찬히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그림을 가져와서 벽에 걸기 전까지도 남자는 진지한 표정으로 못을 바라봤다.

“아, 그림이네요?”

나는 대답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그림이 똑바로 걸렸는지 확인했다. 남자가 뒤로 물러서더니 조금 왼쪽으로요, 아니 좀 더. 오른쪽으로 조금 가야겠어요, 하며 그림이 똑바로 걸릴 때까지 위치를 잡아주었다.

그림이 바로 걸린 것을 확인한 후에 남자는 그림 제목이 뭐냐 물었다. 뭐라고 말해야 할지 난감했다. 분명 불편한 누군가와의 이야기 거리를 만들기 위한 그림이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대답이 없자 남자가 말했다.

“이 사람들은 부부인가 봐요? 남편이 낚시한 물고기를 들고 있네요. 제목이 대어인가요? 하하.”

“대어? 대어와는 좀 어울리지 않는데요. 나름 사연이 있는 그림이에요.”

나는 그림을 갖게 된 이야기. 이혼한, 동료의 언니 이야기까지 하며 그림을 설명해주었다. 하지만 여전히 진짜 제목이 뭔지는 대답해 줄 수 없었다.

“좀 찝찝하지 않아요? 이런 그림 집에 걸어두는 거요.”

남자는 이렇게 말하고는 서둘러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다. 나는 오히려 남자에게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난 뒤에 찝찝함이 사라졌으며 다음에 누군가 그림의 제목을 물으면 대어라고 대답해주리라 결심했다.

 

507호 남자의 집 앞에는 여전히 쓰레기가 놓여 있었다. 506호에도 전단지가 붙어 있었다. 나는 중국집에서 배달을 시키기 위해 506호 문에 붙은 전단지를 뒤적이고 있었다. 얼마 전에 퉁퉁 불은 자장면을 가지고 온 중국집 전단지를 떼어내 반으로 찢어 주머니에 넣었다. 한참을 뒤적이다 신장개업이라고 적힌 중국집 전단지를 발견했다. 오늘은 여기에서 시켜먹어야겠다고 생각하는데 507호 문이 열렸다. 남자와 눈이 마주쳤고 나는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남자는 인사를 받았지만 밖으로 나오지 않고 나를 계속 바라봤다. 그제서야 내가 506호 앞에 서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여기에 전단지가 많아서요.”

그러자 남자가 나와서 옆에 섰다. 나는 그냥 들어가 버릴까, 전단지를 뜯어서 들어갈까 고민했다.

“중국음식 좋아하세요?”

전단지를 떼어내 손에 쥐고 남자에게 물었다. 그냥 집으로 들어갈걸, 말하고 나자마자 후회했다.

“저번에 신세진 것도 있고 해서요. 여기 음식이 참 맛있어요.”

남자가 내 손에 쥐여진 전단지를 흘깃 봤다. 신장개업이라는 글씨가 크게 적혀있을 것이다. 남자가 좋아요, 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제가 하던 일이 있어서. 저희 집에서 드시죠.”

남자는 506호 팻말이 있을 곳을 한참동안 바라보다가 집으로 들어갔다. 나는 집에서 지갑을 가지고 나와 뒤이어 남자의 집으로 들어갔다. 남자의 집에 들어서자마자 나는 훅, 하고 숨을 들이셨다. 천천히 숨을 내쉰 뒤, 다시 숨을 들이마시고 싶지 않아서 한 참을 참았다. 남자의 집에서는 본드 냄새가 났다. 창을 열어뒀지만 냄새는 좀처럼 빠지지 않는 듯했다. 남자는 거실에 없었다. 어떤 방에 들어가 있는 건지도 알 수 없었다. 방은 두개뿐이었지만 모두 문이 닫혀있었다. 소파에 멀뚱히 앉아 남자를 기다렸다. 어디선가 망치질 소리가 들렸다. 한참 뒤에 남자가 방에서 나왔다.

“미안해요. 급하게 작업할 게 있어서요. 이제 좀 쉬어도 돼요.”

나는 남자에게 전단지를 건네 뭘 먹을 건지 물었다. 남자는 전단지를 보지도 않고 메뉴를 골랐다. 중국집에 전화를 해서 음식을 시킨 뒤, 한참동안 남자와 나는 말을 하지 않았다. 벽을 찬찬히 살폈다. 그곳에 우리가 이야기 할만한 게 있지 않을까 해서였다. 하지만 벽은 너무 깨끗했다. 차라리 아까 망치질 소리가 들린 방에 뭔가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곳에 있으면 우리가 할 말이 분명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남자는 방에 들어갈 때나 나올 때나 문을 닫았으므로 방 안이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방에 들어가 보자고 할 수도 없었다. 나는 이 정적이 싫었다.

“집에서 본드냄새가 많이 나네요.”

리모콘을 집던 남자는 내 질문에 리모콘을 떨어트렸다. 남자가 허둥지둥하며 리모콘을 줍고 대답했다.

“직업 때문에, 집에서 작업을 많이 하거든요.”

무슨 일을 하냐고 묻는 것은 너무 결례가 되는 건가 싶어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하지만 정적이 싫었으므로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먼저 말하면 괜찮지 않을까 싶었다.

“건축모형 만들어요. 생소하죠? 하하.”

박물관에 전시된 도시 모형을 생각했다. 작은 건물들이 오밀조밀하게 마치 실제처럼 정렬된 모습. 그것은 보기에도 꼼꼼하고 세세했다. 나는 남자와 그 직업이 은근히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그러자 본드 냄새를 폴폴 풍기며 다닐 남자의 모습도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나는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쉬었다. 본드 냄새가 덜 역하게 느껴졌다.

“성격이 엄청 꼼꼼하신가 봐요.”

“꼭 그렇지는 않아요. 일 할 때는 그렇게 하려고 노력하는데, 제가 워낙 성격이 급해서요. 제 말 잘 못 알아들으시겠죠? 고치려고 하는데 잘 안 되네요.”

남자가 말을 길게 할 때마다 몇 개의 단어가 잘 들리지 않았다. 그럴 때면 남자는 마치 잘 안다는 듯이 같은 말을 반복해 하던가, 내 대답을 듣지 않고 말을 이어 나갔다.

“그래서 망치질도 잘 하시는구나.”

혼잣말 하듯 중얼거리자 남자가 어깨를 으쓱했다.

“망치질하는 게 쉽지가 않아요. 이렇게 내리치기만 하면 될 거 같잖아요. 그런데 이것도 나름 기술이 필요하거든요.”

남자가 왼손에는 못을 들고 오른손에는 망치를 든 시늉을 했다.

“탕탕탕, 이렇게 세 번이면 끝나야 하거든요.”

몇 번 망치질 하는 시늉을 하던 남자가 그걸로는 성이 차지 않는지 잠깐 기다려보라며 망치와 못을 들고 왔다. 남자는 텔레비전 옆에 빈 공간에 못을 박기 시작했다. 정확히 세 번이에요. 남자가 망치질을 세 번 하고 나면 못은 알맞은 깊이로 벽에 박혔다. 그 모습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내게 남자는 망치와 못을 쥐어주었다. 해보세요. 나는 남자의 리듬을 생각하며 못을 박았다. 하지만 여전히 쉽지 않았다.

“그게 아니라요, 망치를 이렇게 잡아보세요. 네, 그 상태에서.”

못을 대고 망치질을 할 때마다 벽에 작은 구멍이 생겼다. 나는 그만해야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남자는 내가 못을 제대로 박을 때까지 시킬 생각인지 계속 외쳤다. 탕탕탕.

“연습해보고 계실래요? 잠시만 작업하던 것 좀 보고 올게요. 벽면 아무데나 해보셔도 돼요. 저기 소파 쪽 벽만 빼구요.”

맞은편 소파가 있는 벽면을 가리키며 남자가 말했다. 남자는 급하게 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언제까지 망치질을 해야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남자가 과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칭찬에 과한 사람. 망치와 못을 양 손에 들고 소파 쪽 벽면을 바라보았다. 자세히 보니 벽지가 달랐다. 다른 벽면은 흰 벽지였는데, 소파 쪽 벽은 작은 꽃무늬가 띄엄띄엄 그려져 있는 벽지였다. 소파가 놓여진 벽면을 바라보며 허공에 망치질을 했다. 배달시킨 음식은 아직도 도착하지 않았다.

남자의 집에서 함께 배달된 음식을 먹은 후로, 평소에는 신경 쓰지 않아 들리지도 않던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정확히 탕탕탕, 하는 망치질 소리였다. 그 소리는 일정한 간격을 두고 들렸다. 세 시간 마다 들리는 소리는 한 번 씩 들리고 그쳤기 때문에 생활에 지장을 준다던가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소리가 세 시간에 한 번씩 들린다는 것을 인식한 후부터는 그 시간만 되면 나도 모르게 신경을 쓰고 있었다. 이쯤 되면 들릴 시간이다, 라는 것을 생각하다보면 나도 모르게 초조해지고 그 생각만 드는 것이었다. 나는 남자에게 쓸데없는 것을 배웠다고 생각했다.

남자를 찾아갔다. 벨을 눌렀지만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또 한 번 벨을 눌렀다. 몇 분 후에 남자가 급하게 문을 열었다.

“무슨 일이세요?”

“망치 소리요.”

“네?”

남자가 눈을 찡그렸다.

망치소리가 너무 시끄러워요, 왜 세 시간 마다 망치질을 하는 거죠? 라고 묻고 싶었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탕탕탕, 그거요.”

그러자 남자가 아,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곤란한데. 나중에 올래요? 내가 확실하게 알려줄게요. 일이 너무 바빠요. 문 닫을게요. 미안해요.”

남자가 문을 닫고 들어갔다. 현관 옆에는 쓰레기가 놓여져 있고, 506호에는 여전히 많은 전단지가 붙어있다. 506호에 사는 사람은 저 망치질 소리 때문에 집에 들어올 수 없는 걸 거야, 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같은 생활의 반복이었다. 회사에 갔다가 집에 돌아와 밥을 먹고 잠을 잤다. 그 생활은 주말이 오기 전까지 계속 되었다. 나는 남자의 망치질 소리를 잊고 있다가도 회사에 가지 않는 주말만 되면 망치질 소리에 시달렸다. 소리는 깊은 밤을 제외하고 일정하게 반복됐다. 남자를 다시 찾아갈 생각은 없었다. 남자와 얼굴을 마주하는 순간에도 망치질 소리가 들릴 것 같았다. 나는 남자와 마주치지 않기를 바랐다. 그리고 소리가 나는 것을 버티다보면 어느새 일상으로 돌아와 더 이상 망치질 소리를 의식하지 않을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저녁쯤에 남자가 찾아왔다.

“지금 시간이 비어요. 올래요?”

가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남자를 따라갔다. 그것은 알 수 없는 이끌림이었다. 남자의 집에서 들리는 망치질 소리, 벽에 박히는 못. 내가 지독히도 싫어하게 된 소리가, 망치와 못이라는 조합이 나를 남자의 집으로 이끌고 있었다. 남자의 집에서는 여전히 본드냄새가 났고 열린 창으로 바람이 들어왔다. 나는 몇 번이나 숨을 참았다. 남자는 작은 망치는 자기가 써야한다며 내게 무거운 망치를 건네주고 벽에 망치질을 시작했다. 역시 남자는 단 세 번의 망치질로 못을 박았다. 내가 어려워하자 남자가 말했다.

“타이밍이거든요. 그 리듬이 있어요. 타이밍에 맞게 쳐야 돼요. 연습하고 있어요.”

살짝 열린 남자의 방문 틈으로 빽빽하게 찬 건축 모형들이 보였다. 저 작은 모형 안에서 도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의 삶을 살고 있을 것이었다. 누군가는 요리를 하고 누군가는 책을 읽고, 누군가는 망치질을 하고…. 탕탕탕. 순간 건축 모형 안에서 희미한 망치질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이윽고 망치질 소리는 남자가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는 순간 멎었다. 나는 못이 박힌 벽을 바라봤다. 병적으로 타이밍을 맞추지 못하는 건 이웃들이 아니라 바로 나였다.

소파가 있는 벽면은 506호와 맞닿아 있는 벽이었다. 내가 늘 전단지를 얻어가는 506호가 바로 이 옆에 있었다. 왜 이곳에는 망치질을 하면 안 되는 거지? 506호에 사는 누군가가 남자에게 찾아와 망치질을 그만하라고 말한 것은 아닐까. 나는 벽을 주먹으로 쳤다. 텅 빈 소리가 들렸다. 벽에 귀를 가져다댔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때 타이밍 좋게 남자가 나왔다. 뭐해요? 남자는 벽에 귀를 대고 있는 나를 이상하게 바라봤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생각했다. 여기서 이상한 소리가 나요, 506호 사람은 누굴까요?, 506호가 전단지를 떼지 않는 이유는 뭘까요, 왜 이곳이 506호와 맞닿아 있을까요, 당신은 왜 그렇게 매일 급하죠?, 왜 매일 망치질을 하는 거죠, 건축모형가라는 직업이 있긴 해요?, 왜 여기에만 망치질을 못하게 하죠?

“그 쪽은 안돼요. 한 번 무너질 뻔 했거든요.”

남자는 내가 벽에 망치질을 하려는 줄 알았는지 내 팔을 잡고 끌어냈다. 벽이 무너졌었다는 소리를 말도 안 되는 변명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망치질을 안 배워도 될 것 같아요. 별로 쓸 곳도 없구, 전 소질이 없나 봐요.”

별로 쓸 곳도 없구, 라는 말에 남자는 조금 기분이 상한 듯 보였다. 그렇죠, 누가 망치질 하는 걸 배우겠어요.

 

남자의 망치질 소리는 이제 회사에서도 나를 괴롭혔다. 그것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소리였다. 하지만 한 시간 마다 망치질 소리가 들려왔고 나는 또 언제 소리가 들릴까 싶어 불안했다. 망치질을 그만 배우겠다고 말한 후부터 남자를 보지 못했다. 하지만 남자는 쓸 곳도 없는 망치질이라고 말한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 매일 망치질을 했다. 그 소리는 타이밍이 너무 좋아서 내가 망치질 소리를 잊을 때쯤이면 다시 들려왔다. 그 소리가 싫어 친구의 집에서 자거나, 회사에서 야근을 하며 집에 들어가지 않았다. 며칠에 한 번 집에 올 때마다 문에 전단지가 여러 개 붙어있었다. 전단지를 하나하나 떼어내며 나는 506호에 붙은 전단지와, 507호 옆에 놓여진 쓰레기를 바라봤다.

집에 들어가지 않는 날이 길어졌다. 그러다 일주일 만에 집에 오는 날, 나는 동료에게 그림을 돌려주었다. 하루빨리 벽에 박힌 못을 빼고 싶었다. 이제는 몇 분마다 들리는 망치질 소리는 못이 박힌 곳에서 나고 있었다. 그림이 찝찝하지 않느냐는 남자의 말이 떠올랐다. 찝찝한 건 그림이 아니었다. 벽에 박힌 못이었다. 벽에 아무것도 걸고 싶지 않았다. 제목도 화가도 모르는 그림이 좋은 그림일 거라는 건 처음부터 믿지 않았다. 동료는 왜 그림을 돌려주느냐는 물음 없이 그림을 받았다. 그녀에게 무슨 말이라도 해주고 싶었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못 때문에 그래요, 라고는 말할 수 없었다.

그녀에게 그림을 돌려준 후에 벽에 박힌 못을 빼내려 했지만 못은 쉽게 빠지지 않았다. 아무리 못을 빼 내려고 안간힘을 써도 못은 그 자리에 완전히 박혀 있었다. 나는 벽에 귀를 대보았다. 바람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주먹으로 벽면을 치자 텅 빈 소리가 났다.

밖으로 나가서 506호와 507호를 바라보았다. 506호에는 여전히 전단지가 붙어있었고 507호에는 쓰레기가 놓여져 있었다. 내가 문을 열고 나와 있는 이 순간에도 5층에 사는 이웃들은 아무도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타이밍을 참 못 맞추는 사람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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