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사면접 그리고 1년
고2때부터 꿈은 기자였다. 그러나 염치없게도 높은 꿈만 가지고 공부는 안했다. 공부 외의 것들. 그러니까 축구를 하거나, 야간 자율학습 시간엔 음악만 집중해서 듣거나, ‘한겨례21’ 읽는 것을 더 좋아했다. 그렇게 12년을 논 결과 인생의 강력한 쓴맛을 알게 해준 재수를 경험했다. 지옥 같은 재수생활 중 힘든 시기를 버티려는 본능이었는지 무엇이었는지 ‘대학에 들어가면 반드시 학보사의 기자가 되어야지’하는 생활의 한줄기 빛이 생겼다. 물론 당시에는 대학생 기자에 대한 로망도 있었다.
우리대학에 입학하자마자 신문사를 찾았다. 마침 예비수습기자를 모집하는 플래카드가 걸려있었고 지원서를 냈다. 입사시험 날에는 시험문제를 성심성의껏 풀고 면접 때는 대답할 수 있는 모든 것에 답했다. 그리고 며칠 뒤 나는 명대신문사 50기가 되었다. 당시 50기였던 동기들은 총 8명이었는데 재미로 신문사 일을 하려던 사람 혹은 집안 사정으로 하나, 둘씩 신문사를 나가게 되었고 지금은 4명만이 남았다. 우리 50기는 가끔 “나갈 사람은 다 나갔다”고 말하며 동기애를 다져 보기도 한다. 실제로 8명 중 반이 떨어져 나갈 만큼 신문사일은 고되다. 한 달 중 2주는 신문사에 모두 헌납하여야 하고, 방학 땐 매일 모여서 기획을 짜고, 학업에도 소홀해 지기도 한다. 또, 1년간 학보사를 경험해본바 생각 속에 있던 대학 기자의 로망도 없었다. 그러나 신문을 한번 발행 하고 난 뒤 느껴지는 성취감과 우리대학 1만 2천학우의 대변자라는 자부심 또, 학내사안을 다루는 보도부로서 전반적인 대학흐름에 대한 통찰력이 늘어가는 것을 느낄 때 ‘나는 명대신문을 그만 둘 수 없구나’ 느낀다. 나는 명대신문사 50기 보도부 준정기자 철학과 10학번 조준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