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 외교와 '실익' 〈111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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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 외교와 '실익' 〈1116호〉
  • 정회훈 사회문화부장
  • 승인 2023.05.15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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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저명한 정치학자 로버트 퍼트넘이 외교와 국내 정치의 관계를 연구하여 발표한 ‘양면 게임’ 이론의 핵심 개념은 윈셋(Win-set)이다. 퍼트넘은 윈셋을 '주어진 상황에서 국내 비준을 얻을 수 있는 모든 합의의 집합'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를 다시금 풀어내면, 윈셋이란 외교에서 얻어내야 한다고 요구되는 일종의 ‘기댓값’이면서 ‘최솟값’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 대한 국내의 요구는 매우 분명했다. 국제적인 경기침체와 신블럭화의 기조 속에서 불확실성을 해소하고 출구전략을 찾아내는 것이 핵심이었다. IRA(인플레이션 축소법)의 세부 지침에서 현대차와 기아차의 전기차 보조금 제외, 미 원전업체인 웨스팅하우스의 한수원을 대상으로 한 지적재산권 고발 문제와 반도체지원법 독소조항 등이 해결해야 할 당면 과제였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그중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했다.

정상 외교가 다양한 함의를 지니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나, 이번 정상회담의 결과물을 바라보면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 이번 회담의 최대 결과물로 꼽히는 핵협의그룹(NCG) 신설 등 으로 한미동맹이 더욱 굳건해졌고, 북한의 핵무기 위협 속에서 이에 조응하는 핵무기가 한반도에 전개된다는 점에서 안보 성과를 논할 수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의 평은 엇갈린다. 한반도에 전개되기로 약속된 핵잠수함과 미사일 트라이던트2는 북한에 대한 견제가 아닌, 중국과 러시아에 대한 견제로 풀이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지적이다. 트라이던트2의 최대 사거리는 12,000km, 운용 시 필요한 최소 사거리는 2,500km 정도로 한반도 인근에 배치된 해당 미사일이 북한을 조준한다고 표현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한반도에 상존하는 미사일은 북한을 빌미로, 미국의 태평양 견제를 위해 배치됐다는 것이다. 이것이 정녕 우리나라의 이익이라고 논할 수 있을까?

거시적으로 한미일 3국의 협조 체제를 공고히 하기 위한 초석이라 할지라도, 주변국들과의 물리적 긴장을 고조시킨 것과 대비해 구체적인 성과를 제시하기 어렵다. 결국 경제도, 안보도 불확실한 정상 외교라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

세계가 각자도생을 외치는 실정이다. 프랑스는 활로를 찾아 중국에 손을 벌 렸고, 이제는 ‘신냉전’을 걱정하는 시대가 됐다. 정부가 모색했어야 마땅한 출 구전략은 ‘국가’의 생존을 위한 ‘실익’ 외교였다. 그러나 격변기에 이루어진 정상 외교의 성과는 조촐하다 못해 차린 것 없는 잔치가 됐다. 워싱턴선언이 사실상의 핵공유인지, 그렇지 않은지를 골몰하는 순간, 신냉전의 첨단에 스스로 발을 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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