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를 넘어 확장하는 세계, SF 〈1116호〉
상태바
경계를 넘어 확장하는 세계, SF 〈1116호〉
  • 김다은, 이수아 수습기자
  • 승인 2023.05.15 14:4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의 독자들이 SF에 주목하기 시작한 이유

SF란 무엇인가. SF(Science Fiction)란 직역하면 과학 소설이지만, 한국에서는 통상 ‘공상 과학’이라고 불려 왔다. 공상은 본디 현실적이지 못하고 실현 불가능한 상상을 일컫는다. 그 때문에 한국에서 SF란 근거 없고 허무맹랑한 미래에 대한 상상이라는 오명이 있었다. 그러나, SF를 단지 허무맹랑한 공상이라고 정의하기엔 그 상상력과 가능성이 지금의 독자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의 독자들이 SF에 주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의되지 않는 SF의 정의

SF의 세계는 정의하기 어려울 만큼 무궁무진하다. 〈스타워즈〉 시리즈, 〈스타트렉〉 시리즈와 같은 모험과 전쟁을 주요 소재로 삼아 우주선이 등장하는 스페이스 오페라 장르, 『1984』, 『멋진 신세계』, 『우리들』처럼 부정적인 암흑세계를 그려내는 디스토피아 장르, 〈매트릭스〉 시리즈와 같이 기계화된 세상을 암울하게 그리는 사이버펑크 장르가 있다. 그 밖에도 세계 종말을 주제로 하는 포스트 아포칼립스, 상상력에 기반한 병기가 등장하는 밀리터리 SF, 지난 일을 다르게 가정해 보는 대체 역사물 등 모두 SF의 하위 장르이다.

SF에 대한 전문가들의 정의도 분분하다. 한국SF아카이브 박상준 대표(이하 박 대표)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SF의 정의에 대해 “영국의 SF 작가 브라이언 올디스의 ‘SF란 우주에서 인간의 정의와 그 위상을 변화하는 지식체계 안에서 추구하는 것’이라는 말에 공감한다”라고 밝혔다. 『우리는 SF를 좋아해』 저자 심완선 평론가(이하 심 평론가)는 “독자가 경험하는 현실 세계와는 확연히 다르지만 또 알 수 없거나 불가능한 영역은 아닌 낯선 세계”라고 정의했다.

미국의 SF 소설가 데이먼 나이트가 “과학 소설이란 내가 손을 들어 '이것이 바로 과학소설이다’라고 가리키는 모든 것이다”라고 말한 것처럼, SF는 거대한 포용력과 잠재력을 가진다. SF는 무엇이든 될 수 있다.


한국 SF가 걸어온 길

한국에서 SF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소수의 마니아만 즐기는 입지가 좁은 장르였다. 출판계나 영화계에서 큰 영향력을 펼치지 못해 ‘SF 불모지’라는 자조적인 평가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2010년대 후반부터, 한국 SF 창작물은 국내에 SF가 소개되고 난 뒤로 가장 큰 관심을 받고 있다. 특히나 주목할 점은 SF 문학의 비약인데, ‘SF 관객은 있어도, SF 독자는 없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영상물이나 순수문학과 비교되며 그 가치가 폄하되어 왔기 때문이다.

『동아일보』의 보도에 따르면, 교보문고의 2020년 국내 SF 소설 판매량은 전년도 동기 대비 300% 가량 증가했다.

▲국내 SF 소설의 연도별 판매량 추이 그래프이다.
▲국내 SF 소설의 연도별 판매량 추이 그래프이다.

한국 SF 작품은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주목받기 시작했다. 정보라 작가의 『저주토끼』가 지난 2022년 인터내셔널 부커상의 최종 후보에 오르고, 이윤하 작가의 『나인폭스 갬빗 1』도 3년 연속 휴고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 또한, 김초엽 작가의 소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일본 △중국 △대만 △스페인 등에 판권이 팔렸다.

한국 SF의 성취는 갑자기 땅에서 솟은 결과가 아니다. 한국의 SF 성장에는 여러 이유가 존재한다. 첫 번째로, 소수이지만 웹진에 꾸준히 글을 게재하고 라이트노벨*을 출판하던 작가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얼마나 닮았는가』의 저자 김보영 작가는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출판이나 신춘문예에서 장르문학을 받아주지 않았기 때문에 인터넷을 통해 SF와 판타지가 퍼졌고, 최근에는 라이트노벨과 웹소설이라는 형식으로 시장을 넓혔다”라고 말했다. 두 번째로, 국내 작가들에게 SF를 연재할 무대가 늘어난 것도 큰 원인이다. ‘한국과학문학상’과 ‘문윤성 SF 문학상’을 위시로 크고 작은 SF 공모전의 수가 증가했다. 국내 유일의 SF 무크지* 『오늘의 SF』, 과학 서평 잡지 『시즌』, SF 전문 잡지 『어션 테일즈』와 같은 국내 SF 잡지 또한 창간됐다. 이에 대해, 심 평론가는 “SF 앤솔러지 기획, 단행본 출간, 공모전 개최 등 SF를 읽거나 이해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SF가 자주 이야기되는 만큼 사람들이 관심을 갖기가 쉬워졌고, 관심이 생긴 다음에는 ‘나도 써볼까?’ 아니면 ‘나도 읽어볼까?’ 하기 좋아졌다”라며 좁혀진 거리감에 대해 설명했다.

이 밖에도 OTT가 콘텐츠 확보에 주력하며 한국 최초의 우주 영화인 〈승리호〉를 필두로, 〈서복〉, 〈고요의 바다〉 등 퀄리티 좋은 한국 SF 콘텐츠를 포섭했고, 관객들은 OTT를 통해 이를 접하게 되면서 SF와의 거리감을 좁혔다. 또한, AI 알파고가 이세돌 9단과의 대국에서 승리하는 것을 전 국민이 실시간 중계로 보면서 과학기술 시대의 도래를 실감했다. 이에 코로나19의 유행이 더해지면서, SF보다 더 SF같은 상황을 경험한 것도 한국 SF 전성시대의 시작에 크게 이바지 했다.

*무크지 : 잡지(magazine)와 책(book)의 성격을 동시에 지닌 비정기간행물이다.
*라이트노벨 : 일본에서 비롯된 소설로 짧은 글을 특징으로 하는 장르문학이다.


우리가 SF를 사랑하는 이유

SF가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은 이제 자명하다. 심 평론가는 SF의 인기에 대해 “독자들이 기존의 소설에서 찾기 어려운 독서 경험을 SF에서 기대하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설명했다. 세계와 문학의 변화를 체감하고 새로운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원하는 독자들은 이제 SF에 주목하는 것이다.

① 경계가 지워진 세계

소설 속에 퀴어를 주체적으로 드러낸 박상영 작가의 『대도시의 사랑법』, 여성의 삶을 조망한 조남주 작가의 『82년생 김지영』 등 소수자성은 최근 한국문학 내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주제 의식이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상상에 한계가 없는 SF는 세계의 정상 규범에 질문을 던지기 적합하다. SF는 소수자의 삶을 소설에 드러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소수자를 나누는 경계를 지운다.

▲사진은 『방금 떠나온 세계』의 표지이다. (출처/ 알라딘)
▲사진은 『방금 떠나온 세계』의 표지이다. (출처/ 알라딘)

김초엽 작가의 단편집 『방금 떠나온 세계』 속 단편 「숨그림자」는 이러한 시도를 잘 보여준다. 호흡으로 소통하는 미래 인류의 행성 ‘숨그림자’에서 깨어난 원형 인류 ‘조안’은 우리 사회에서 차별받는 소수자들을 상징한다. 미래라는 시간적 배경과 ‘숨그림자’라는 공간적 배경은 SF적 상상력에 지나지 않지만, 낯설고 비효율적이라는 이유로 배척당하는 존재는 독자들에게도 익숙하다. 지금의 독자들에게는 보편적인 소통 방식이 작품 속에서는 가장 이질적인 소통 방식이다. 이로 인해 ‘조안’이 겪는 차별을 목격한 독자들은 자연스레 현실을 돌아보게 된다. SF는 우리 사회의 정상성을 비틀고, 비틀어진 세계 속에서 독자들은 포용력을 배운다. SF를 읽으며 다름을 받아들이는 방식을 깨닫고 독자들의 현실 세계가 확장되는 것이다.

② 과학기술의 일상화

SF에 드러나는 과학기술에 대한 눈부신 상상력은 독자들이 SF를 읽게 하는 주요한 요소로서 오랫동안 작용해 왔다. 박 대표는 최근의 SF 열풍에 대해 “일상에서 체감하는 과학기술의 변화 속도가 점점 더 빨라지는 데에 따른 필연적인 결과다”라며, 우리가 느끼는 과학기술의 발전과 SF의 인기가 무관하지 않다는 의견을 밝혔다. 지금의 독자들이 과학기술로 인한 세계의 변화를 더 이상 낯설어 하지 않기 때문에 더욱 수월하게 SF에 몰입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곽재식 작가의 연작소설집 『ㅁㅇㅇㅅ : 미영과 양식의 은하행성서비스센터』에 수록된 「칼리스토 법정의 역전극」에서 빅데이터를 활용하는 인공지능 로봇 판사가 그 예시이다. 과거에는 재판과 같이 엄격하고 영향력 있는 일을 인공지능에게 맡기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현재의 인공지능은 진출하지 못할 영역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인공지능 그림, 인공지능 챗봇, 인공지능 면접관과 인공지능 역량검사까지 경험하고 있는 독자들이 인공지능 판사를 상상하는 것은 더 이상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인공지능 판사가 어뷰징*에 걸려 정확한 판단을 내리지 못하는 상황조차, 인공지능 비서의 엉뚱한 답변을 경험해 본 독자들에게는 익숙한 풍경이다. SF의 설정이 있음 직한 일로 인식되는 세계에 살아가고 있는 독자들은 더 이상 SF를 허무맹랑 하기만 한 이야기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어뷰징 : 사전적 의미로는 오용, 남용 등을 뜻하는 말로, 시스템의 허점을 이용해 부당한 이득을 취하는 것을 가리킨다.

③ 편리한 일상에 대한 경고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과거보다 과학적 상상력에 친숙해진 독자들은 SF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과학기술의 발전은 반드시 윤리적 상상력을 필요로 한다. 박 대표 또한 “인류가 과학기술 문명을 유지하는 한 그에 따른 윤리적 상상력은 반드시 필요하다”라며 과학기술의 밝은 면뿐만 아니라 어두운 면을 강조하기도 하는 SF의 역할에 대해 언급했다. 실제로 최근 한국 SF 작품들은 기후와 환경에 집중하고 있다. 세계가 돌이킬 수 없는 방향으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느끼고 있을 독자들에게 편리한 일상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의문을 제시하는 것이다.

정세랑 작가의 소설집 『목소리를 드릴게요』에 수록된 단편소설 「리셋」은 인류의 과도한 소비와 환경 파괴에 대한 경고를 담고 있다. 소설 속에서 ‘리셋’은 거대한 지렁이가 나타나 지구의 플라스틱을 먹어 치우며 인류 문명을 ‘리셋’한 사건을 지칭한다. 미래 인류가 보낸 것으로 추정되는 거대한 지렁이는 ‘모든 결정은 거대 자본에 방만히 맡긴 채 1년에 한 번씩 스마트폰을 바꾸고, 15분 동안 식사를 하기 위해 4백 년이 지나도 썩지 않을 플라스틱 용기를 쓰고, 매년 5천 마리의 오랑우탄을 죽여 가며 팜유로 가짜 초콜릿과 라면을 만들었던’ 인류를 붕괴시킨다. 미래에서 거대 지렁이를 보내 현재의 환경 파괴적인 문명을 붕괴시킨다는 설정은 SF적 상상력에 불과하지만, 이는 곧 지금 우리의 현실을 돌아보게 한다.


우리는 왜 SF를 읽어야 하는가

SF는 세계의 변화를 가장 발 빠르게 반영해 왔다. 사회가 요구하는, 혹은 사회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세계의 변화를 상상하여 스토리텔링하는 것이 SF의 작동방식이다. 심 평론가는 앞으로 독자들이 계속해서 SF를 읽어야 할 이유에 대해 “현실을 재현하는 작품만으로는 알기 어려운 세계를 SF를 통해 접할 수 있다”라며 독자들이 경험할 수 있는 세계의 확장이 SF를 읽어야 할 이유라고 설명했다. SF 속에서 세계는 파괴되기도 새롭게 건설되기도 하며, 구성원들은 사회로부터 배제되기도 아무렇지 않은 듯 편입되기도 한다. 그 모든 것들을 읽고 상상하는 과정에서, 독자들은 현실 세계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고민할 수 있다. “말도 안 되는 일을 계속해서 벌이는 것 자체가 우리를 그나마 나은 곳으로 이동시키는 거야”. 김초엽 작가의 장편소설 『지구 끝의 온실』 속 한 문장이다. 어쩌면 허무맹랑한 상상에 지나지 않을 SF가 우리를 더 나은 세계로 이끌어 갈 수 있을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 인문캠 :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거북골로 34 (명지대학교) 학생회관 2층
  • 자연캠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명지로 116 학생회관 2층
  • 대표전화 : 02-300-1750~1(인문캠) 031-330-6111(자연캠)
  • 팩스 : 02-300-1752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승환
  • 제호 : 명대신문
  • 창간일 : 1954년 11월
  • 발행인 : 유병진
  • 편집인 : 송재일
  • 편집장 : 한지유(정외 21)
  • 디자인·인쇄 : 중앙일보M&P
  • - 명대신문의 모든 콘텐츠(영상, 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명대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jupress@hanmail.net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