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도 콘돔 끼는 법 배워야죠 〈1111호(개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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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도 콘돔 끼는 법 배워야죠 〈1111호(개강호)〉
  • 김나영 기자
  • 승인 2023.02.27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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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괄적 성교육이 포르노를 가르친다고요?

성인은 성관계를 위해 공간을 마련할 수 있다. 하지만 공간을 마련하기 어려운 청소년들은 그것과 비슷한 환경을 찾기에 이르렀다. 청소년들이 출입이 불가한 모텔 대신 ‘룸카페’를 택하는 이유다. 룸카페는 본래 의도대로라면 밀실 안에서 영화나 게임을 즐기는 장소지만 밀실 안에 침대와 화장실이 갖춰지며 모텔과 유사한 공간으로 거듭났다. 콘돔은 살 수 있지만, 혼숙할 수 없는 나이인 청소년들이 함께 있을 수 있는 공간으로 택하기 좋은 장소가 된 것이다. 사실상 ‘청소년 모텔’이 되어버린 룸카페 문제는 청소년 성생활을 향한 우려로 이어지는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청소년 성생활이 아니라 청소년의 ‘건강한’ 성생활이다.

그간의 성교육에서도 그렇듯 사회에서는 순결과 금욕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지만 계속해서 청소년을 성관계 없는 사랑에만 가둬둘 수 없다. 사랑과 성이 청소년에게 유해한 게 아니라 미숙한 결정과 그 과정이 청소년에게 유해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룸카페’라는 장소에 대한 문제 제기에 앞서서 룸카페를 택하기까지 위생을 비롯한 피임 문제들은 고려하였는지, 성관계를 하기까지 성적 자기결정권이 잘 행사되고 있었는지에 대한 담론이 있어야 한다. 청소년의 성생활만을 막자는 목소리들은 문제의 주인공인 청소년들이 위와 같은 담론 즉, 성교육에 주체적으로 참여하지 못하게 만든다.

 

성을 알고 싶어요

'성'을 알면 성적 자기결정권을 기를 수 있고 성적 자기결정권을 기르면 건강한 성생활을 도모할 수 있다. 청소년들은 성교육을 통해 스킨십을 시작할 때나 예상하지 못한 성관계가 일어날 때, 자신을 잘 관리하는 법을 배우고 기준을 세울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성을 둘러싼 폐쇄적 인식은 청소년이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성교육을 제대로 받기 어렵게 만든다.

과거에는 순결과 금욕을 중요시하는 분위기가 강해 성을 부끄러워했다면 최근에는 이와 더불어 성범죄나 조기성애화와 같은 문제로 인해 성을 꺼리는 추세다. 결론적으로 사회에서 성에 대한 언급을 엄숙하게 여겨 청소년들이 성에 노출되는 상황이나 사랑하는 사람과 하는 성적 행위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한다는 점은 여전하다.

그렇다면 청소년도 성이 부끄러워서, 성이 두려워서, 성을 배우고 연습하는 것을 꺼릴까? 서울시립 아하!청소년성문화센터 (이하 아하!센터)에서 실시한 ‘2022 청소년 성문화 연설대전’에서는 청소년이 직접 나서서 자신들이 배우고 싶은 성교육이 무엇인지 발표했다. 그중 한 청소년은 “성에 대한 대화를 자연스럽게 나눌 수 있는 환경이나 성교육을 제대로 받을 수 있는 기회가 부족하다”라면서 성교육을 이끌어주는 멘토 강사와 같은 연령대의 학생들이 소규모로 만나 성장 발달 상황이나 감수성에 맞는 교육이 진행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또한 아하!센터 포괄적 성교육팀 정수현 팀장(이하 정 팀장)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청소년들은 자신들이 성적 주체로서 성 건강과 복지를 위한 다양한 지식, 태도, 기술을 습득할 권리가 있음을 인지하고 있다”라면서 “그러나 여전히 청소년을 무성적 존재, 혹은 보호해야만 하는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회문화적 분위기가 존재해 성교육 시간에 정말 궁금한 것들을 알기 어렵다”라고 전했다.

 

성교육 시간인데 왜 성을 배우지 않나요?

: 교내에서 콘돔은 있을 수 없는 일

폐쇄적인 사회 분위기 속에서도 학교 성교육은 아동 · 청소년에게 실질적인 성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러한 예시로 2020년, 한 고등학교 교사는 올바른 피임법을 알려주기 위해 바나나에 콘돔을 씌우는 교육을 준비했으며 2022년에는 한 초등학교에서 우리 몸의 2차 성징을 알려주기 위한 교육용 정액 체험을 마련하기도 했다. 하지만 교육용임에도 학부모의 반발이 심해 교내에서 콘돔과 교육용 정액을 꺼내는 일은 없었다. 학부모들은 변화하는 성교육이 아이들을 성에 빨리 노출시킬 뿐이라고 우려하는데 기독교 · 보수단체들도 이와 같은 맥락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2020년에 일어난 ‘나다움 어린이책’ 회수 사건은 학부모와 보수단체의 주장에 여성가족부(이하 여가부)마저 제대로 된 성교육을 진행하지 못하는 상황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나다움 어린이책’은 아이들이 성별 고정관념과 편견에서 벗어나 다양성을 존중하고 ‘나다움’을 찾아가도록 돕기 위해 여가부가 롯데지주, 초록우산어린이재단과 함께 시작한 교육문화사업이다. 여가부가 선정한 도서 중 『아기는 어떻게 태어날까?』는 1971년 덴마크에서 출간돼 현재까지 미국, 유럽 등에서도 널리 읽히고 있는 유 · 아동 성교육 자료의 고전이다. 그러나 해당 도서가 포르노처럼 외설적으로 성관계를 표현해 아이들에게 조기성애화를 불러일으킨다는 문제가 제기되자, 여가부는 단 하루 만에 『아기는 어떻게 태어날까?』를 포함한 나다움 어린이책 7종을 회수하기로 결정했다. 덴마크에서도 처음부터 해당 도서가 유 · 아동 성교육 도서로 환영받지는 않았지만 하루 만에 회수를 결정한 우리나라와 달리 덴마크 국회의원 다수는 회수요청이 터무니없는 주장이라고 반박하며 해당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콘돔이나 교육용 정액을 이용한 실습도, 아이의 탄생과 출산까지의 경험을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 설명한 도서도 학교에서 보기 어려워진 상황이다. 학부모들과 보수단체에서는 해당 교육들이 아이들에게 조기성애화를 일으키고 성관계 시기를 앞당긴다고 말하지만 어린 나이에 성 지식에 노출된다고 해서 조기성애화가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유네스코 국제 성교육 가이드(2018 개정)』(이하 국제 성교육 가이드)를 보면 5~12세 아동을 위한 교육 내용으로 △다양한 결혼 방법 △생물학적 성과 젠더의 차이 △성 및 재생산 건강과 관련한 몸의 부분 묘사하기 △성기가 질 속에 사정하는 성관계의 결과로 임신할 수 있음을 알기 △신체적 접촉을 통해 쾌락을 느끼는 방식 설명하기 등을 제시한다. 『아기는 어떻게 태어날까?』는 이러한 내용을 설명하는 도서 중 하나이며 해당 도서에는 포르노식의 성관계 묘사가 아닌, 두 남녀가 사랑에 빠지고 성관계를 통해 아이를 갖는 과정을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게 설명한 삽화가 들어가 있다. 유네스코는 2016년 옥스퍼드대학의 연구를 인용하며 국제 성교육 가이드의 성교육이 성행위 시작 시기 지연에 유의미한 효과를 냈고 피임률이 증가하는 효과가 나타났다고 발표했다.

 

포괄적 성교육이 말하는 성

: “우리 아이들이 행복하고 건강하게 살 수 있는 지도”

학부모와 보수단체가 반대하는 체험형 성교육의 움직임은 ‘포괄적 성교육’에 해당한다. 포괄적 성교육이란 국제 성교육 가이드에서 지시하는 성교육으로 섹슈얼리티(sexuality)에 대한 인지적, 정서적, 신체적, 사회적 측면을 배우는 커리큘럼을 기반으로 한다. 아동과 청소년들로 하여금 △자신의 건강과 복지 △존엄성에 대한 인식 능력 △존중에 기반한 사회적, 성적(sexual) 관계 형성 능력 △자신 및 타인의 복지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한 선택 능력 △자신의 삶 속 권리에 대한 이해와 보호 능력을 높일 수 있는 지식, 기술, 태도, 가치를 갖추도록 하는 데 목적이 있다.

포괄적 성교육은 순결과 금욕을 중시하며 생물학적으로만 성에 접근했던 기존의 성교육과 달리 ‘인권’을 바탕으로 한 교육임이 확실하게 드러난다. 행복한성문화센터 배정원 소장(이하 배 소장)은 “포괄적 성교육은 인권을 기반으로 내가 어떤 성별, 정체성, 지향성을 가지고 있고 그런 존재로서 다른 존재인 타인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를 알려준다”라면서 “금욕이 아니라 성을 어떻게 건강하고 주도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지와 같은 성적 자기결정권에 대한 학습과 연습이 이뤄진다”라고 전했다. 또한 정 팀장은 “아하!센터에서 진행되는 모든 성교육은 포괄적 성교육을 기반으로 운영된다”라며 “포괄적 성교육은 어린이와 청소년을 성적 주체로 바라보고, 정확한 생물학적 성 지식을 습득하는 것을 넘어 내가 가지고 있는 성 인식과 태도를 점검하며 나의 일상에서 어떻게 실천할 것인지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라고 밝혔다.

유럽에서는 포괄적 성교육이 이미 자리를 잡아 시행되고 있다. 특히, 독일은 공교육뿐만 아니라 성교육 전문기관들까지 나서서 전문적으로 성교육을 시행한다. 독일에서 7학년(만 12세)부터 13학년(만 18세)까지 다니는 학교 MBO(MAX BECKMANN OBERSCHULE)에서는 7~10학년(우리나라 기준 고교 1학년까지)을 대상으로 매주 45분씩 성교육 시간을 가진다. 교육은 학년별로 세분돼 7학년 때는 몸과 감정 변화를, 8학년 때는 남녀 성기의 모양과 콘돔을 이용한 피임방법 및 성폭력 교육을, 9학년 때는 성 정체성 및 다양성을, 10학년 때는 임신과 낙태의 권리를 배운다. 교육은 포괄적 성교육을 기반으로 하여 어릴 때부터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게 교육이 진행된다. 무엇보다 이론적으로만 접근하지 않고 직접 만든 남성의 성기 모형에 콘돔을 씌워보기도 하는 등 실습형 교육을 진행하여 아이들의 직접적인 참여를 유도한다.

독일은 성교육을 민주시민교육이라 여기며 정치교육과도 같은 선상에 두고 있다. 이에 대해 배 소장은 “자신을 존중해야 타인을 존중할 수 있는데 성교육은 존중에 관한 얘기다”라면서 “결국 성교육은 인성교육의 한 측면으로서 민주시민을 양성하는 교육으로 이어지는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독일의 이러한 인식은 학교와 기관이 성을 숨기지 않고 구체적으로 교육하도록 하며, 아이들 또한 부끄러워하지 않고 궁금증을 해소해 올바른 성 지식을 습득할 수 있게 만드는 기반이 됐다.

 

청소년을 위한 성교육

: 포르노가 아닌 ‘교육’임을 알기

아동 · 청소년들이 미디어를 접하는 속도가 빠른 만큼 성관계를 자극적으로만 표현한 음란물이나 정확하지 않은 정보들이 섞여 있는 여러 콘텐츠를 처음 접하는 연령대 또한 낮아졌다. 동시에 교육부 · 보건복지부 · 질병관리본부가 2018년에 발표한 ‘제14차 청소년 건강행태조사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아동 · 청소년들의 성관계 시작 평균 연령은 만 13.6세로 조사됐다. 이런 상황에서 청소년의 룸카페 출입이 문제로 나타나는 만큼, 청소년이 건강한 성을 배울 수 있는 교육이 중요한 상황이다.

포괄적 성교육이 조기성애화를 일으킨다는 우려에 대해 배 소장은 “그러한 주장은 ‘성에 대해 알려주면 호기심이 생겨서 성관계를 빨리할 것’이라는 생각에 기반한 것”이라며 “그러나 아이들은 이미 성에 접해있다. 아이들이 보는 포르노는 실제 사랑하는 관계에서 일어나는 것도 있고 아닌 것도 있기 때문에 정확한 정보 전달을 위해 제대로 된 성교육이 필요하다”라고 전했다. 또한 포괄적 성교육을 포르노식 교육이라 여기는 주장에 대해 “성교육이 포르노식의 교육이라는 것조차 그동안의 성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얘기이다. 성교육을 포르노라고 생각해 아이들에게 성관계를 알려준다고 생각하지만, 포괄적 성교육은 사랑을 하고 성관계를 가지는 과정을 내 인생에서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 알려주는 중요한 교육이다”라고 전했다.

실제로 네덜란드의 경우 성에 대해 자유롭게 생각을 공유하고 학부모들도 개방적인 성교육에 동참하자 1970년대 중반에 12.4세였던 첫 성관계 나이가 2006년에는 17.7세로 올라가는 모습을 보였다. 유네스코도 세계 각국의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섹슈얼리티 교육이 성행동 시작 시기를 앞당기는 일은 거의 없다고 분명히 말하고 있다. 무엇보다 연구에 따르면 포괄적 성교육이 성관계 시작 시기와는 직결되는 영향이 없으며, 오히려 시작 시기를 늦추거나 성적 행동에 더 책임있는 태도를 보이게 한다는 입장이다.

 

언제까지 청소년들에게 ‘하지마’라고만 외칠 수는 없다. 과거에는 혼인 연령이 낮아 금욕과 순결 교육이 효과가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현시대의 청소년에게는 기존의 성교육이 자기결정권을 기르고 건강한 성생활을 도모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유네스코의 국제 성교육 가이드에 기재된 것과 같이 5세 아동부터 자신의 성적 권리를 알고, 실습에 참여하여 성을 배울 수 있도록 ‘건강한’ 성생활에 대한 시각이 넓혀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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