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술국치 100년, 조선왕실의궤와 약탈된 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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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술국치 100년, 조선왕실의궤와 약탈된 문화재
  • 최홍
  • 승인 2010.08.31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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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탈된 문화재 중 약 6만 1천 409점이 일본에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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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경술국치 100년을 맞아 1922년 일제강점기 때 조선총독부의 기증형식으로 반출된 ‘조선왕실의궤’가 대두되고 있다. 일본에 무단으로 반출된 ‘조선왕실의궤’를 반환하기 위해 일본 왕실이 문화재 목록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이로써 ‘조선왕실의궤’의 반환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에 힘이 쏠리고 있다. 하지만 이 외에도 6만 1천 409점의 한국 문화재가 일본에 빼앗겨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본지에서는 조선왕실의궤를 비롯한 문화재의 가치를 다시 한번 상기하고, 반환하는데 있어 논란이 되는 점은 무엇인지 알아보고자 한다.
 

꼭지1. 빼앗긴 ‘조선왕실의궤’, 돌려받을 수 있는가

본래 ‘의궤’는 불교의 밀교파에서 염송과 공양 등의 절차를 적은 것을 뜻했다.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신승운 원장(이하 신 원장)은 “조선시대 때 나라의 중요한 행사가 정해지면 임금의 명령으로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를 바탕에 둔 의주儀註를 만든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의주라는 것은 행사에 필요한 물품이나 진행사항 등을 세부적으로 적은 주석”이라고 덧붙였다. 이처럼 ‘의궤’는 국장國葬, 가례嘉禮 등 국가의 중요한 전례典禮가 발생했을 경우 시작부터 종료까지 모든 일정과 관련 기록을 상세하게 집성한 행사보고서인 셈이다. ‘의궤’는 내용에 따라서 분류 할 수 있는데, 길례吉禮, 가례嘉禮, 빈례賓禮, 흉례凶禮, 군례軍禮 등 오례五禮의 성격에 따라 각각의 ‘의궤’를 나눌 수 있다. 신 원장은 “특히 ‘의궤’ 중에서도 ‘어람권’은 임금만이 열람할 수 있는 ‘의궤’였다”며 “푸른 비단과 꽃모양 장식으로 겉을 꾸몄다는 점이 일반 홍포로 만든 ‘의궤’와의 차이점”이라고 말했다. 신 원장은 ‘조선왕실의궤’가 학술적인 측면에서도 매우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는 “의궤는 당시 왕실행사를 구체적, 세부적으로 나타내어 당시 우리나라 의례를 연구하기에 더 없이 좋은 자료”라며 “왕실행사의 모습이 그림으로 나타나있어, 글보다는 모양과 규격을 좀 더 구체적이고 입체적으로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신 원장은 “어람권은 전례행사를 이해하기 위한 일반 ‘의궤’와는 달리, 왕실의 존엄을 높이는 목적을 가지고 있어 화려하고 장엄하다”고 덧붙였다.

이런 조선전기의 의궤는 임진왜란 때 모두 산실되었다. 임진왜란 이전, 궁내에는 춘추관 사고史庫가, 지방에는 충주ㆍ전주ㆍ성주에 사고가 있었지만, 임진왜란으로 춘추관ㆍ충주ㆍ성주의 사고는 모두 왜병에게 소진됐고 오직 전주 사고만 난을 면했다. 계명문화대학교 서지학자 배현숙 교수(이하 배 교수)는 “적세가 치열해지자 임금이 있는 행궁行宮으로 중요한 실록實錄만을 소개疏開시켰고 다른 서책은 제외되어 현재 산실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1922년 조선총독부가 일본 정부에 기증하는 형식으로 가져간 것도 많다. 고종 이후의 의궤가 다수를 차지하며, 그 중 주로 오대산에 있던 것도 많다. 배 교수는 “오대산 실록은 1913년에 가져갔으나 그보다 늦게 가져간 것으로도 추정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조선총독부의 기증으로 일본 궁내청이 의궤를 소유하는 것은 식민지를 기반으로 한 약탈이기 때문에 원인무효”라며 “조선의 의궤는 조선의 기록문화이자 국가 공문서로서 조선의 정통성을 계승한 한국민족의 기록물이자 소중한 문화유산”이라고 말했다. 또, 그는 지난 2006년 도쿄대학교가 기증하는 오대산실록을 신중하게 고려하지 않고 수용한 서울대학교의 태도에 대해서도 “서울대학교는 도쿄대학교의 제안을 역사의식 없이 전격 수용함으로써 실록반환운동의 의미를 퇴색시켰다”며 “실록을 받는데 있어서 공식적인 사과를 받지 않고, 오히려 서울대학교 측에서 환수 답례로 감사장을 보내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이어 ‘조선왕실의궤’를 비롯한 왕실문화재에 대해 신 교수는 “조선왕실의궤나 실록 자체는 왕실의 기록이기 때문에 나라에서 판매나 기증하는 것이 아니”라며, “다만 전쟁 때 소실된 것이 개인으로 인해 판매되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약탈로 인해서 유출된 것은 반환대상으로 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그는 “일본에 있는 우리나라 의궤를 보면 왕실의 도장이 찍혀있다”며 “그 도장이야 말로 왕실의 서적으로써 판매하지 않는 물건임을 증명한다”고 말했다. 덧붙여 신 교수는 “결국 그것은 왕실이 판매하지 않는 것을 약탈했다고 볼 수 있다”고 밝혔다. 또, 문화재를 약탈한 국가들이 자신들의 국가가 보존을 더 잘한다는 이유로 반환을 거부하고 있는 것에 대해 신 교수는 “문화재를 스스로 관리할 힘이 없기 때문에 대신 관리한다는 것은 근대화 시켜준다는 이유로 식민지화하려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모든 문화재는 원래 자리에 있어야 가치가 있는 것”이라며, “적법한 절차를 통해 도덕적 정당성을 되찾았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한국문화유산연구원 박상국 원장도 “의궤는 조선왕실이 소장했던 것이 명백하고 대부분이 식민지 치하에서 총독부를 통해 일본으로 반출됐을 것임이 거의 확실한 것들”이라며 “조선총독부로 인해 무단 반출된 것은 반드시 환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우리나라의 중요한 의례 5가지인 길례吉禮, 가례嘉禮, 빈례(賓禮), 군례軍禮, 흉례凶禮의 오례 가운데 실행하여야 할 것을 뽑아 도식圖式으로 엮은 책이다.
*가례嘉禮 :오례五禮의 하나. 왕가王家에서는 왕의 성혼이나 즉위, 또는 왕세자ㆍ왕세손ㆍ황태자ㆍ황태손의 성혼이나 책봉 따위의 예식을 이르고, 사가私家에서는 관례冠禮나 혼례를 이른다.
*전례典禮 :왕실이나 나라에서 경사나 상사가 났을 때 행하는 의식을 말한다.
*길례吉禮 :오례五禮의 하나. 나라에서 지내 온 제사의 모든 예절을 이른다.
*빈례賓禮 :오례의 하나. 외국 사신을 접대하는 의식에 관한 모든 예절을 이른다.
*흉례凶禮 :오례의 하나. 국장國葬을 포함하는 장례를 이른다.
*군례軍禮 :오례의 하나. 군사 의식에 관한 모든 예절을 이른다.
*행궁行宮 :임금이 나들이 때에 머물던 별궁을 말한다.
*실록實錄 :한 임금이 재위한 동안의 모든 사실을 적은 기록이다.


필자: 최홍 기자 g2430@mju.ac.kr

꼭지1책2.JPG
 
△‘의궤’에는 왕실 행사에 필요한 물건들이 그림으로 상세하게 나타나 있어 우리나라 전통행사를 연구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 대동문화연구원에서 볼 수 있었던 ‘조선왕실의궤’에 관한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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