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경제학]블루보틀경제학〈107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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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경제학]블루보틀경제학〈1077호〉
  • 장기민 디자인경제연구소장
  • 승인 2020.10.15 22: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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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 대부분의 커피숍에서는 주문을 기다리 는 동안 손님 손에 진동벨을 쥐여준다. 손님이 커피숍에 들어가서 음료 주문을 완료하기 전까 지는 직원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는 것이 가 능하다. “이건 어떤 음료에요?”, “저 손님이 먹 고 있는 커피가 이 메뉴인가요?” 등 점원과 나 누는 대화는 소비행위와 서비스에 대한 가치교 환이거나 상품(커피)을 구매하기 위한 일련의 준비과정이며 손님이 요금을 지불하고 커피를 받게 되는 순간 그 거래는 끝이 난다.

  보통 음료값을 지불하면 커피가 아닌 진동벨 부터 먼저 받게 되는데, 이 진동벨을 받아든 순 간 손님과 커피숍 직원과의 대화는 더 이상 이 어지지 않는다. 커피숍 입장에서 진동벨은 일 종의 주문에 대한 보증서이며 ‘(음료) 제조가 완료되면 (진동벨이) 울릴 테니 손에 쥐고 조용 히 기다려라’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손님이 주문한 커피가 완성되고 ‘진동벨’이라는 보증 서를 직원에게 제출하고 나면 직원은 보증서를 수령하는 동시에 커피를 전달해 준다. 그리고 이로써 둘의 거래는 끝이 난다.

  그러나 스타벅스 매장에는 진동벨이 없다. 음 료가 완성됐다는 신호는 직원의 육성을 통해 손 님에게 일일이 전달된다. 그렇게 아날로그 방식 으로 손님을 호출한 스타벅스 직원은 “고객님 께서 주문하신 음료가 맞으시죠?”, “뜨거우니 까 조심해서 드세요” 등의 말을 건네며 커피가 전달될 때까지 추가적인 대화를 이어간다.

  남들 앞에 이름이 공개되는 걸 극히 꺼리는 우리나라 국민의 성향 때문에 한국에 진출한 스타벅스만 이름이 아닌 영수증 번호와 닉네임 을 부르고 있을 뿐, 원래 스타벅스는 진동벨이 없다. 손님의 이름을 부르며 손님과 대화를 한 마디라도 더 하게끔 만드는 나름의 운영철학이 다. 커피 판매를 통한 수익증대보다 사람에 더 욱 집중하는 것이다.

  사람에게 집중하게끔 하는 공간이 또 있다. 국내에 1호점을 오픈하자마자 거대한 인파를 새벽부터 줄을 서며 기다리게 만든 ‘블루보틀’ 이다. 2년 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방문했을 때 블루보틀을 처음 맛보게 되었는데, 이후부터는 미국을 떠나기 전까지 줄곧 블루보틀에서만 커 피를 마셨던 기억이 있다. 그만큼 인테리어가 깔끔하고 공간이 주는 브랜드 정체성이 특별했 다. 우리나라에 진출한 블루보틀에 사람들이 많은 줄을 섰다는 기사를 보고도 필자는 별로 놀라지 않았는데, 미국에 있는 블루보틀에서도 사람들이 그렇게 줄서서 커피를 마시는 걸 봤기 때문이다.

  블루보틀의 창업자인 제임스 프리먼은 원래 커피를 즐겨 마시는 클라리넷 연주자였다. 커 피 애호가인 그는 오케스트라 생활을 그만두고 자신이 직접 만든 커피를 사람들에게 나눠주기 위해 블루보틀을 창업했다. 시작부터 화려하지 는 않았다. 아주 작은 창고를 빌려 직접 로스팅 을 하며 커피를 만들었고, 주말엔 리어카에 커 피 재료를 싣고 다니며 사람들에게 판매했다. 블루보틀에 사람들이 줄을 많이 서게 된 이유 는 에스프레소 기계로 커피를 내리지 않고 드 립 커피를 직접 제조해 판매했기 때문이다. 10 분이면 스타벅스에서는 10잔도 넘는 커피를 제 조했을 텐데, 블루보틀에서는 커피 한잔을 마 시기 위해 10분이 넘는 시간을 기다려야만 한 다. 하지만 블루보틀의 커피는 점점 유명해지기 시작했고, 창업 5년만에 리어카에서 벗어나 1 호점을 오픈하게 된다.

  당시는 스타벅스가 엄청난 성장을 이루던 때 라 미국 사람들은 어느 지점에 가도 똑같은 서 비스, 똑같은 맛의 음료를 제조해주는 스타벅 스에 익숙해져 가고 있을 때였다. 그 상황에서 블루보틀은 갓 볶아낸 원두를 직접 리어카에 싣고 와서 주문 즉시 갈아 커피를 내려주고, 커 피를 내리는 시간 동안 손님과 대화를 나눈다. 10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커피 한잔을 팔기 위 해 직접 드립 커피를 제조하고, 그 시간을 활용 해 대화를 나누며 손님과 충분한 감정을 교류 한 뒤, 어디서도 맛보지 못한 맛있는 커피를 손 에 쥐어주는 블루보틀의 서비스에 미국 사람들 은 열광하기 시작했다. 단순히 맛있는 커피를 마시는 게 아니라 손님 자신이 존중받고 있다 는 것을 스타벅스보다 더 느끼게 된 것이다.

  주문을 위한 필연적인 대화만을 나눈 뒤, 대 화가 종료됐음을 의미하는 진동벨을 손에 쥐어 주는 국내 커피숍 문화와는 대조적으로 스타벅 스와 블루보틀, 특히 블루보틀은 창업당시부터 손님과의 대화를 중요시했고 사람에게 더 집중 할 수 있는 연구를 했다. 비즈니스 실패의 원인 을 분석한 결과들을 보면, 대부분 기술력이나 제품의 성능에 초점을 맞추는 경우가 있다. 그 러나 의외로 문제는 사람과의 관계에 있는 경우 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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