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작은 세계]트롤리 딜레마〈107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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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작은 세계]트롤리 딜레마〈1077호〉
  • 이유리 작가
  • 승인 2020.10.15 22: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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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칼럼은 ‘은정’이라는 가상의 인물을 주인공으 로 하는 소설 형식의 철학 칼럼입니다. 원 저자는 이준형 작가임을 밝힙니다.

 

  “K가 피해자인 건 나도 잘 알지. 그런데 어쩔 수 없잖아. 막말로 우리가 다 나가? 얼마 전에 첫 애 생긴 B 입장은 생각 안 해 봤어?”

 

  사내연애를 하던 K와 D의 결별 소식이 알려 진 뒤, 회사는 한동안 소란스러웠다. 두 사람은 같은 영업팀 소속이었다. 선임이었던 D는 K의 입사 후 줄기차게 매달려 연애를 시작했고, 이내 삐걱거렸다. 두 사람은 사내연애를, 아니 그냥 만나서는 안 될 사이였다. D는 부족한 자기 확 신을 연인과의 관계에서 찾으려 했고, 그 확신이 무너지는 순간에는 여지없이 돌변했다. 팀원 앞 에서 K에게 소리를 지른 뒤 ‘공과 사를 구별하 려 했다’는 변명을 늘어놓은 것도 수차례, 결국 두 사람이 헤어졌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문제가 생긴 건 회식이 끝난 어느 날 밤이었 다. 소문마다 내용은 조금씩 달랐지만 큰 맥락 은 다르지 않았다. K와 다른 직원의 관계를 의심 한 D가 그의 집으로 찾아가 폭언, 혹은 폭력을 행사했다는 것. 경찰이 회사를 드나들기를 수차 례. 결국 인사위원회가 소집됐고, 두 사람은 분 주하게 그곳을 불러 다녔다.

  정작 회사를 떠나게 된 것은 K였다. (1) 연애 는 두 사람의 일이므로 회사가 관여할 것이 아니 며, (2) 이로 인해 생긴 폭력 또한 회사와는 무관 한 일이고, (3) 이런 사적인 일로 그간 회사에 많 은 기여를 한 D를 내보낼 수 없다는 입장으로 정 리됐다는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건 사실상 K를 내쫓는 일’이라며 수군댔지만 정작 아무도 나서서 의견을 말하는 사람은 없었 다. 누구나 제2의 K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으리라.

  K가 짐을 챙겨 회사를 떠나는 날, 나는 트롤 리 딜레마를 생각했다. 학부 1학년 시절 수강한 심리학 입문 수업에서 들은 이론이었다. “전차 가 선로를 따라 달려오고 있어요. 전차가 가는 선로에는 다섯 사람이 묶여 있는 상황입니다. 전 차가 가지 않는 반대편 선로에는 한 사람이 묶여 있죠. 여러분이 선로 밖에서 이 상황과 마주했 다고 생각해 보죠. 다섯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 는 선로전환기를 당기면 돼요. 하지만 그럼 반대 편 선로에 있는 한 사람이 죽게 됩니다. 여러분 은 이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하고 싶나요?”

  나를 포함해 강의실에 앉은 꽤 많은 사람이 ‘레버를 당겨야 한다’는 데에 손을 들었다. 교수 님은 재차 질문을 던졌다. “그럼 내용을 조금 바 꿔보죠. 전차가 선로를 따라 달려오고 있어요. 아까와 마찬가지로 선로에는 다섯 사람이 묶여 있는 상황입니다. 바로 옆에는 전차를 멈출 만큼 아주 무거운 사람이 서 있습니다. 다섯 사람을 구하는 유일한 방법은 옆에 서 있는 사람을 선로 위로 밀쳐서 그 무게로 전차를 멈추게 하는 것인 데, 이 경우 전차는 멈추게 되지만 그 사람은 죽 게 됩니다. 이 상황에도 여러분은 한 사람을 희 생하는 선택을 할 건가요?”

  강의실 내부가 웅성거리기 시작했고, ‘레버를 당겨야 한다’고 했던 사람 중 상당수가 손을 내 렸다. 소리가 조금 잦아들자 교수님은 재차 이야 기를 시작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트롤리 딜 레마는 이런 식으로도 변형이 가능합니다. 우선 첫 번째 사람을 살펴보죠. 그는 최빈국에 사는 가난한 사람입니다. 그는 어느 날 노숙자 소년을 어느 장소로 데려다 주는 대가로 1,000달러를 받았어요. 소년을 데려다준 뒤, 뒤늦게 그게 인 신매매였다는 걸 알게 되었지만, 그냥 개의치 않 았죠. 우리는 아마 이 사람을 ‘나쁜 놈’이라며 손 가락질할 거예요.

  반면 두 번째 사례는 선진국에 사는 어느 중 산층의 이야기입니다. 그도 마찬가지로 유튜브 에서 이 소식을 듣고 ‘나쁜 놈!’이라며 첫 번째 사례의 사람을 욕했죠. 그리고 그는 새로 나온 1,000달러짜리 스마트폰을 샀어요. 이 순간에도 최빈국에서는 여전히 1,000달러를 주고받는 인 신매매가 성행하고 있고, 만약 그 사람이 스마 트폰을 포기하고 1,000달러를 자선단체에 기부 했다면 그 일을 막을 수 있었지만 말이죠. 어떤 가요. 자신의 선택이 간접적 혹은 직접적이라는 이유로 그 선택의 경중이나 옳고 그름을 따질 수 있다고 생각하나요? 여러분은 이런 상황이라면 어떤 선택을 하고 싶나요?”

  스무 살의 나는 그런 상황이라면, 그리고 내 가 그것이 옳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절대 그 중산층 같은 선택을 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그때와 지금의 나는 무엇이 달라진 것일까. 아 니, 나는 왜 조금도 변하지 못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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