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의 모습을 드러내지 마라”〈107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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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의 모습을 드러내지 마라”〈1074호〉
  • 채현석(국문 16) 학우
  • 승인 2020.08.17 23: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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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8월 들어, 신촌역을 방문했던 사람 이라면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 맞이 해 지하철 광고를 본 적 있을 것이다. “성소 수자는 당신의 일상 속에 있습니다”라는 문구와 성소수자들의 얼굴 사진이 들어가 있는 광고다.

  광고는 게시부터 쉽지 않았다. 해당 광고 는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매년 5월 17일)을 기념하는 기획이었기에, 지난 5월 게시하기로 예정됐다. 하지만 서울교통공 사(이하 서교공)는 광고 거부에 대해 어떠 한 이유도 밝히지 않고 거절했다. 이후 재심 의를 요청했으나 서교공은 “민원이 들어올 시 즉시 철거하며 환불하지 않겠다”라는 통 보를 했다.

  이에 맞서 성소수자 인권 증진을 위한 활 동을 펼치고 있는 아이다호 공동행동과 무 지개행동, 차별 금지법 제정 연대는 국가인 권위원회 앞에서 서교공의 차별행위 규탄 과 광고 게시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진행 했다. 온라인에서는 광고 게시 거부 소식을 접한 사람들이 서교공 고객의 소리에 항의 하고, 각자의 SNS에 광고 문구 해시태그를 건 게시글을 올리며 아이다호 공동행동에 참여했다. 차별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항의 덕분에 지하철 광고는 두 달 만에 무사히 걸 릴 수 있었다.

  하지만 지난 2일, 광고가 게시된 지 이틀 이 채 지나지 않아 지하철 광고가 훼손되었 다. 광고 문구는 성소수자 역시 일상을 함 께 살아가고 있는 사회의 구성원임을 알리 며 공존을 꿈꾸는 말이었다. 누군가를 배제 하거나 원망하는 광고가 아니었다. 그럼에 도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찢긴 광 고판에 일요일 오전부터 성소수자를 비롯 한 차별을 반대하는 많은 시민이 상처를 받 았다.

  훼손이 발생한 지난 2일 오후, 광고가 훼 손된 자리에 무지개행동 회원들과 시민들 은 포스트잇으로나마 문구를 다시 만들어 붙였지만, 포스트잇 역시 다음날 오전, 절 반 이상이 떨어졌다.

  지하철 광고는 지난 3일 오후에 같은 위 치에 다시 게시됐다. 무지개행동은 다시 게 시된 광고가 오는 31일까지 훼손 없이 게시 될 수 있도록 신촌역 인근을 지나는 시민들 에게 광고 게시 상황을 확인해 줄 것을 요청 하고 있다.

  이 범죄는 형법상 재물손괴이기도 하지 만, 공공장소에 광고를 걸어 성소수자들의 모습을 드러내지 말 것을 강제하는 명백한 혐오를 과시한 것이다. 실제로 지난 3일 서 울 마포 경찰서에서 재물손괴 혐의로 조사 를 받은 A 씨는 혐의를 인정하며 “성소수자 들이 싫어서 광고판을 찢었다”라고 진술했 다. 광고판 훼손은 성소수자들에게 모습을 드러내지 말 것과 죽은 듯이 숨어 지낼 것을 명령하는 과격한 혐오였다. 한국 성소수자 들은 적법한 절차를 거쳐 게시한 광고조차 훼손의 위험을 걱정해 야 하는 혐오를 직면하 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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