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놀로그] 사쿠라는 다 졌는데〈107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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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놀로그] 사쿠라는 다 졌는데〈1072호〉
  • 김일송 공연칼럼니스트
  • 승인 2020.06.02 19: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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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해방의 서울〉

  “‘근로 정신대’ 가셨으면, 품삯이 조선보다 갑절은 더 쳐준다더라. 어디 방직공장 같은 데서 돈 열심히 벌고 있을 테니까, 곧 돈 보따리 싸들고 연락 오시갔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이자 여성인권운동가인 이용수 할머니의 성명 발표 후, 포털사이트에는 ‘위안부’와 연관검색어들이 연일 검색어 상위에 올라있었다. 이 문제 앞에서 평소라면 한목소리를 내었던 단체들 사이에서도, 다른 의견을 내고 있다. 깊이 성찰할만한 주장도 있으나, 그보다는 소모적 논쟁이 더 눈에 띈다. 여기서까지 한마디를 거들 이유는 없을 것이다.

  저렇게 운을 뗀 건 연극 〈해방의 서울〉에 한 두 마디나마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언급이 있기 때문이다. 앞서 인용한 저 대사다. 연극 〈해방의 서울〉은 해방 전 영화 촬영 현장을 배경으로 한다. 때는 1945년. 장소는 ‘창경원’ 후원의 춘당지로, 영화 〈사쿠라는 피었는데〉의 마지막 촬영을 앞둔 배우들과 영화사 사장 등이 주인공이다. 그들이 촬영 중인 영화는 자발적으로 지원하여 태평양 전쟁에 나서자는 내용의 친일 영화다. 본격적으로 연극의 내용을 살피기 앞서서, 잠시 일제강점기 영화계가 어떠했는가부 터 다루겠다.

  1940년 1월 조선총독부는 조선 영화령을 공포했다. 이는 영화의 제작과 배급 등 전 과정에 걸친 검열을 통해 일본의 군국주의를 선전하는 영화만 제작하도록 통제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이를 반기는 영화인들도 있었다. 그중 한 사람이었던 영화감독 이규환은 『조광』에 기고한 글을 통해 “당국의 배급 방면의 통제와 기술인 등록제 실시 등과 같은 영화인 통제와 더불어 심의기관인 영화인협회가 조직된 것을 생각해보면 그동안 무질서, 무통제로 갈팡질팡하던 영화계가 일대 활기를 띤 것만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신진 영화인들은 "자본과 기술, 인적 자원 면에서 조직화하는 영화기업화를 통해서 조선 영화의 질을 향상하고 일본과 만주 등으로 시장을 넓힐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주장에 동조한 영화인은 상당수였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로부터 연극 〈해방의 서울〉 속 등장인물들이 어떤 유형의 인물이었는지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로 영화인으로 등록하기 위해 내선일체 등 조선총독부가 요구하는 일본 정신을 체화하는 건 기본이었다. 연극에는 이러한 그들의 인식 정도를 가늠할 수 있는 대사들이 등장한다. 여주인공 지화정은 “이젠 일본어가 조선어니까 소홀히 말라. 자기 재능만 믿고 일본어 대충했다가 낙오된 예술가들 많다”라고 문하생에게 일본어를 배우라 종용하고, “지금 조선의 예술가들은 무슨 사상이니, 뭔 사조니, 뒷구멍에서 구호만 외치고 거기에만 빠져서 허우적거리고 있어요”라며 일본에 저항하는 동료 영화인들을 폄훼한다.

  연극은 마지막 촬영을 앞두고 서너 시간 동안 일어나는 일화를 그리고 있다. 중년의 남녀 주인공은 한때 부부였으나, 이제는 이혼한 사이. 두 사람 다 한마디도 안 지고 티격태격이다. 그러던 중 여주인공이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게 결말이 바뀐 사실을 알게 되고, 감독과 승강이를 벌이게 된다. 그러던 중 감독이 물에 빠지는 사고가 벌어지고, 이야기는 감독을 대행할 사람을 찾는 대결로 이어진다. 감독을 꿈꾸며 10년간 묵묵히 조감독을 보던 영화사 부장과 일본에 유학하다 이제 막 귀국한 영화사 사장의 아들은 감독 자리를 두고 연출력 대결을 펼친다. 이런저런 촌극 뒤 촬영을 재개하려는데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지고, 기상예보를 들으려 켠 라디오에서는 히로히토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연극 〈해방의 서울〉은 그동안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 〈만주전선〉 등을 통해 일제강점기 조선인들을 보였던 박근형 연출의 작품이다. 일제강점기, 친일 등 주제와 소재는 무거울 수 있지만, 객석에서는 공연 내내 웃음이 새어 나온다. 사쿠라 진지, 오랜데 아직도 청산하지 못한 역사를 되새기게 만드는 블랙코미디다. 〈해방의 서울〉은 지난달 5월 31일까지 대학로 선돌 극장에서 공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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