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공부] 코로나19 이후 도시의 미래〈1072호〉
상태바
[미래 공부] 코로나19 이후 도시의 미래〈1072호〉
  • 박성원 『미래 공부』 저자
  • 승인 2020.06.02 19:0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990년대 중반 세계 인류학자들이 깜짝 놀랄 고대도시 유적지가 남미 페루에서 발견되었다. 페루 리마에서 북쪽으로 200km 떨어진 곳에서 발견된 캐럴시티는 대략 4,600~4,000년 전쯤 건설된 것으로 추정되었다. 이 도시가 인류학자들의 많은 관심을 끈 것은 이곳이 인류 문명의 기원을 설명해 줄 것으로 기대됐기 때문이었다. 인류학자들은 “오랫동안 인류가 흩어져 살다가 어떤 이유로 도시라는 거대 거주공간을 만들어 모여 살 결심을 했을까”라는 질문을 해왔고, 캐럴시티는 이 의문을 풀어줄 단서를 제공할 것으로 믿어졌다. 마더 시티(mother city)로 불리는 이 고대도시는 인류가 처음으로 도시형 생존공간을 만든 곳으로 판명되었기 때문이다.

  캐럴시티에서 발견된 유적은 물고기를 잡는 어망, 피리, 그리고 허브였다. 이 유적을 통해 인류학자들이 내린 결론은 매우 간명하지만 충격적이었다. 인류가 처음 모여살기로 결심한 이유는 생존력을 높이기 위한 노력(어망과 물고기 교환)과 즐거움(허브를 태우고 피리를 불면서 놀았음)때문이었다. 기존의 인류학은 적의 침입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모여 살게 되었다고 보았으나, 캐럴시티가 발견된 이후에는 물물교환과 즐거움 때문이라는 새로운 학설이 부각되었다.

  도시형 대규모 거주공간은 인류의 생존에 유리해 전 세계로 확산되었다. 이 때문에 지금도 전 세계 도시화는 지속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1970년대 도시지역 인구비율이 50%였으나 현재 90%를 넘어섰다. 10명 중 9명은 도시에 산다는 얘기다. 그러나 사람과의 접촉으로 감염되는 코로나19 이후, 모여 사는 것의 이점이 지속될까. 모여 사는 것보다 흩어져 사는 것이 생존에 유리하다면 우리의 거주공간은 어떻게 바뀔까. 이뿐만 아니라 남들과 접촉하지 않고도 더 즐거운 무엇이 많다면 굳이 대도시에 모여 살려고 할까.

  흩어져 살 경우의 미래를 살짝 엿볼 수 있는 보고서가 있다. 네덜란드 정부가 2040년의 미래를 예측하면서 사람들이 흩어져 살 경우, 어떤 도시의 모습이 등장할지 내놓은 보고서다 (박성원, 『미래공부』, 2019). 이 미래 시나리오가 흥미로운 이유는 스페셜리스트(전문직)가 우대받는 경우와 제너럴리스트(팔방미인)가 우대받는 두 가지 가정에서 흩어져 살 경우를 예상하고 있어서다.

  먼저 스페셜리스트 중심의 흩어져 살기 모습은 ‘재능타운(talent town)’으로 지칭된다. 작은 도시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으며, 세계 각지에서 온 재능 있는 전문가들이 자신의 기술을 뽐내며 거주한다. 첨단 기술이 도시와 직장에서 적용되고 있으며, 의사소통이 빠르고 매우 효율적으로 도시를 운영한다. 이 도시 시민들은 첨단 기술을 활용해 쇼핑이나 레저를 즐길 수 있다. 이들은 치열한 경쟁을 통해 세계 최고를 가려내는 데 익숙하다. 승자는 한 직장에서 오래 일하지 않고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곳으로 이동한다. 이 때문에 인구이동률이 높다. 정부의 개입은 최소화되고 노동유연성도 높다.

  반면, 제너럴리스트 중심의 흩어져 살기 모습은 ‘평등생태도시(egalitarian ecologies)’로 불린다. 소규모 도시들이 공존하며 기업들은 대기업보다 중소기업 수가 많다. 제너럴리스트 시민들은 기술개발, 연구 기획, 시설 관리 등 복합적인 일에 능숙하다. 혁신적인 기술개발보다는 범용적인, 꾸준히 수요가 있는 중급 정도의 기술이 활용된다. 사회가 고급 숙련기술자를 우대하지 않아 외국인 노동자들도 어렵지 않게 이 사회에 진입한다. 문화적 역동성이 높아 때로는 문화 간 갈등이나 충돌도 발생한다. 임금 수준은 재능타운과 비교해 낮다.

  좀 더 심도 있게 새로운 미래를 논의해야겠지만, 만약 우리가 흩어져 사는 것이 생존과 즐거움에 더 유리하다고 판단한다면, 지금까지의 생존방식에 변화는 불가피하다. 예를 들면, 도시화의 추세는 주춤할 것이며, 중앙정부의 권한이 줄고 지방자치권한의 확대가 예상된다. 대도시, 대기업 중심의 성장전략보다 중소도시 균형발전, 중소기업과 상생 등이 이전보다 더 부각될 것이다. 물론, 이런 예측은 국민들이 어떤 미래도시를 바라는지, 또 그 미래를 실행할 기술적 실력과 정책적 뒷받침 여부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코로나19 이후 도시의 미래를 예측할 때 고려할 또 다른 변수는 기존의 트렌드들이다. 예를 들면, 인공지능기술의 발전과 일자리 대체, 기후변화, 경제적 측면에서 확대균형(생산과 소비의 증가로 경제적 성장을 일구는 방식)의 한계, 자국우선주의로 균열되는 반세계화 흐름 등이 코로나19 사태와 상호작하면서 우리 사회에 어떻게 적용될지는 지속적 관찰이 요구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 인문캠 :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거북골로 34 (명지대학교) 학생회관 2층
  • 자연캠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명지로 116 학생회관 2층
  • 대표전화 : 02-300-1750~1(인문캠) 031-330-6111(자연캠)
  • 팩스 : 02-300-1752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승환
  • 제호 : 명대신문
  • 창간일 : 1954년 11월
  • 발행인 : 유병진
  • 편집인 : 송재일
  • 편집장 : 한지유(정외 21)
  • 디자인·인쇄 : 중앙일보M&P
  • - 명대신문의 모든 콘텐츠(영상, 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명대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jupress@hanmail.net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