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사람은 펜과 그림붓을 든다'〈107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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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사람은 펜과 그림붓을 든다'〈1071호〉
  • 유근범 기자
  • 승인 2020.05.11 15: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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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자 출신의 시인이자 화가, 김석현(국문 70) 문학박사를 만나다

저서

1994년 시집 : 봄날에 대한 사유

2003년 시집 : 한강을 바라보며

2007년 시집 : 바람이 불면

2009년 연작시집 : 그리운 어울림

2013년 연작시집 : 정음시초 제1집, 정음시초 제2집, 정음시초 제3집

연작시집 : 정음시초 분권시집 총 20권

연작시집 : 보름달밤의 긴 내 말 제1집, 보름달밤의 긴 내 말 제2집

연작시집 : 보름달밤의 긴 내 말 분권 시집 12권

수상

■ 이육사 문학상 번역부문 대상

■ 타고르문학상 최우수상

■ 푸시킨 문학상 현대시 리얼리즘 최우수상

■ 한국신미술협회미술대전 입선

■ 세계평화미술 공모 대전 입선

오늘도 펜과 붓을 손에 쥐고, 가고 오던 길 따라 발길을 내딛고 있는 김석현(국문 70) 시인을 본지가 직접 만나 보았다.

  Q. 교사? 시인? 화가? 정확한 직업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저의 원래 꿈은 법관이었습니다. 근데 집이 너무 가난 해서 법대를 못갔어요. 그래도 공부에 대한 열망이 있 어 친구랑 서울에 올라와 공부했는데, 잠잘 곳이 없어서 마포 형무소 앞 사설 독서실에서 엎드려 자고 공부하기 를 반복했죠. 그러다 일단 학비가 저렴한 서울교육대학 교를 졸업, 이후 교직 생활을 하면서 법 공부를 이어나 갔어요. 근데 초등학교 교사 시절이던 1969년에 열병으 로 몸이 얼마나 아프던지 생과 사를 넘나들 정도였죠. 그렇게 고비를 넘기고 새로운 생명을 얻으니, 법조인이 돼 남을 벌주는 것보다 시인이 돼서 사람들의 마음을 치 유하고 위로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법 관이 되겠다던 꿈을 완전히 포기하고 나니 권력에 대한 욕심이 사라졌고, 1970년 명지대학교 국어국문학과로 편입하여 본격적으로 시 쓰는 법을 배웠어요. 졸업하고 난 후 교사자격증이 나왔고 중 · 고등학교 국어교사로 시인의 길을 걷게 됐죠.

  Q. 법관의 꿈을 포기하고 선택한 시인의 길, 어떠했나요?

  시를 처음 입문했을 당시 배우는 게 굉장히 어렵고 힘 들었어요. 그 시절에는 시 작법론이 없었거든요. 시론은 시인의 작품을 논하는 겁니다. 심상과 이미지, 내용과 사실성이 어떻게 얽혀있고, 어떻게 무의식을 끌어당기 는지 동기의식을 배우는건데 체계화된 방법이 없었죠. 시가 대중화되기 전까지는 일본이나 유럽에서 유학한 분들에게 시를 배웠어요. 그들이 스승이 되어 제자들에 게 가르침을 전달하는 방식이죠. 근데 이마저도 결국 제 자가 스승의 시를 모방하는데 그칩니다. 이러니 대중들 이 시를 접근하기 쉬웠겠어요?

  Q. 시에 대해 터득한 것이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사실 시는 굉장히 간단하다고 생각해요. 혼란스러운 언어 조직을 시의 형태로 정리하는 겁니다. 그 과정에서 인간의 정신을 맑고 깨끗하게 정화시키며, 기발한 생각 들을 하게끔 해요. 또 시는 거짓 없이 쓸 수 있는 글이에 요. 시는 진실성, 진리를 발견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경험이 중요한 것 같아요. 힘들었던 유년 시절은 나의 아픈 경험이 되기도 하지만 그것을 딛고 일어나면 아름답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경험 을 바탕으로 시를 접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Q. 그럼 김석현 시인이 추구하는 시가 있다면?

  앞서 말했듯이, 시를 오랫동안 써오면서 제가 발견한 시에 대한 관념은 자기 심성을 스스로 정화할 줄 알고 일반화해 나가는 과정입니다. 시를 ‘어떤 목적’으로 접 근하는 것이 아닌 ‘어떤 의미’가 나에게로 다가오는 것 인지 표현하는 게 우선 아닐까요? 그리고 누군가 내 시 를 읽었을 때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내용이 들어가면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정리해서 사람들을 정 화하고 공감할 수 있는 시 말이죠

  Q. 그렇다면 시인께서는 어떤 시를 쓰고 계신가요?

  어떤 형식으로 시를 쓸지 따로 생각하지는 않아요. 마 음속에서 떠오르는 생각이나 느낌을 운율 있는 언어로 압축해서 표현합니다. 시는 무의식 상태에서 계속 써보 면서 터득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이것을 쉽게 말해 ‘자 동기술법’이라 합니다. 근데 또 이런 식으로만 접근하면 논리가 빈약해져요. 요즘 포스트모더니즘 시들이 그렇 죠. 시들이 깊이 없고 추상적이에요. 그렇지만 이것도 우리 사회 문화의 한 부분이고 자유를 추구하는 방법이 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는 현실과 문학에 괴리를 두 고 싶지 않아서 추상적인 것보다 진실성과 진리를 발견 하는 시를 쓰고 있습니다.

  Q. 교직 생활을 하면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고 들었습니다.

  네 맞아요. 1996년 여름, 고등학교에서 수업을 진행하 다가 기절해버렸어요. 응급실에서 MRI를 찍어보니 머 리에 종양이 자랐더라고요. 그렇게 두 번째 생사를 넘 나들었어요. 그 후유증으로 왼쪽 눈이 기능을 상실했 고, 냄새를 잘 맡질 못해요. 학교에서 발생한 일인데 공 상 처리도 못 받았죠. 그런 어려움 가운데 지팡이를 짚 고 다시 교단에 섰습니다. 그리고 학문에 대한 열정을 포기할 수 없어서 단국대학교 문예창작과 대학원에 진 학해 박사학위를 취득했죠.

  Q. 저서 중에서 가장 애정 가는 시집은 무엇인가요?

  제가 쓴 시가 5,000편 정도 되는데 그 중에서 처음 썼던 시들이 가장 먼저 생각납니다. 초심이라고 하잖아요.(웃 음) 1970년대부터 꾸준히 썼던 시들을 『봄날에 대한 사 유(1994)』라는 시집으로 처음 만들어내요. 저는 문단에 가입한 시인이 아니었고 당시 시집을 자유롭게 출판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었지만, 결국 민주화 시대가 왔고 시 집을 자유롭게 출판할 수 있게 되죠. 이러한 과정에서 처 음으로 나만의 시집을 출판했으니 많은 애정이 가죠.

  그리고 ‘낱말시집’인 『정음시초』도 기억이 나요. 명 지대학교에 재학할 때, 최현배 교수님의 수업을 듣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분의 학문을 제가 따라가지 못했어 요. 그래서 교수님이 편찬한 우리말 대사전을 ‘ㄱ’에서 ‘ㅎ’까지, 각각 시 100편씩 2,000수를 지어, 『정음시초』 라는 연작시집을 묶어 냈죠. 사실 열손가락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이 없어요.(웃음) 제가 쓴 모든 시가 다 소중하고 애정이 갑니다.

  Q. 김석현 시인이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시인이 있나요?

  이 세상 모든 시인 분들 다 존경합니다.(웃음) 그 중에 서 한분 선택해야 한다면, 독립운동을 하면서 시를 쓰신 이육사 선생님을 존경합니다. 일제강점기라는 어려운 시기에도, 탄압에 굴하지 않고 민족의 아름다운 목소리 를 내셨죠. 저항정신과 자유시의 융합으로 시대의 상황 을 예술로 승화한 이육사 선생님의 기질은 본받을만 하 다고 생각합니다.

  Q. 현재 그림도 그리신다고 들었는데, 그림은 언제 부터 그리기 시작했나요?

  그림을 입문하게 된 계기는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나 서 1년 뒤, 제가 고등학교에서 문예반을 담당하게 된 이 후 부터였어요. 축제 때 시화를 발표해야 되서 학생들과 함께 화방에 물감을 사러갔어요. 화방에서 물감을 사며 “근처에 그림을 잘 그리는 화백님이 계십니까?”라고 물 었더니 화방 직원이 “네 있습니다. 그 화백님의 그림은 선생님의 시처럼 아름답습니다”라고 말했죠. 그 한마디 가 저를 그림의 세계로 이끌었어요. 그 화백님이 궁금해 직접 찾아가 그림을 배우고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게 됐어요.

  Q. 다양한 그림을 그리셨는데, 어디서 영감을 얻는지 궁금합니다.

  시는 보이지 않는 그림이에요. 그것을 심상이라고 하 죠. 반면 그림은 눈으로 볼 수 있는 시에요. 시에서 오는 특유한 감성이 있어요. 저는 시를 평생 썼던 사람의 감 성으로 소재를 선택합니다. ‘아 이거는 접근해서 그려 보자’라는 것처럼 뭔가 다가오는 게 있어요. 실제로 직 접 사생 대회에 가서 그려보고 싶은 대상을 카메라로 찍 어서 가져와요. 그림의 소재는 시적 감성이 가져다주는 모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Q. 그림을 그릴 때 유화를 고집하시던데, 그 이유가 있을까요?

  학생들이랑 시화 그림을 그릴 때 우연히 유화를 사용 했는데 종이에 색 번짐이 없더라고요. 또 수채화보다 유 화가 더 회화적인 느낌을 낼 수 있어요. 무엇보다 수채 화는 한 번에 그릴 수 있는데 유화는 붓질을 더 많이 해 야 됩니다. 또 코딩도 해줘야 하고요. 이렇게 복잡한 단 계를 거치는 게 더 많은 노력이 들어서 그런지 유화 그림 에 더 애정이 가게 됩니다.

  Q. 앞으로 시인이자 화가로서 어떤 목표가 있나요?

  그림도 계속 그리고 개인 전시회도 개최하고 싶어요. 또 『정음시초』도 완결하고, 우리민족의 잃어버린 광 야에 대한 서사시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학문에 대한 열 정은 많은데 혼자하다 보니 시간이 부족해요. 그래도 열 심히 한번 해봐야죠.

  Q. 끝으로 김석현 시인에게 명지대학교란?

  명지대학교는 저한테 굉장히 중요한 의미가 있죠. 명 지대학교는 저를 중 · 고등학교 교사의 길로 이끌었고, 국문학을 계속 연구할 수 있는 다리를 만들어줬어요. 제가 명지대학교를 졸업하지 않았더라면 아마 지금쯤 중 · 고등학교 교사가 되지 못했을 거예요. 많은 시를 쓸 수 있었던 이유도 명지대학교에서 배운 지식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이상복 학과장님, 김석 환 교수님, 성백인 교수님이 많이 생각납니다. 평생 시인 의 길을 걸어가도록 깊고 너른 학문과 사랑을 주신 교수 님께 감사합니다.

 

시쓰기? 누구나 할 수 있다

  Q. 시 전공자가 아니어도 쉽게 시를 접근할 수 있는 방법 있을까요?

  사람들은 시를 시인의 전유물로만 알고, 접근 하는 것을 꺼려해요. 그러다보니 진실과 진리에 대한 강한 의지가 부족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을 시의 세계로 안내하고 싶어서 오프라인 강의를 시작했어요. 강의를 위해 『달려가자 백두대간 대우주로』라는 강의 자료를 만들고 우주 사진을 표지로 쓰고 싶어서 나사(NASA)에 메일을 보내 고 했던 것이 기억나네요.(웃음) 본론으로 돌아와 서 ‘시는 어려운 것이다’라는 관념을 버리고 다양 하게 시를 접근했으면 좋겠어요. 시의 길은 누구 에게나 열려있습니다.

  Q. 문학 분야에 도전할 학우들을 위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나 조언이 있다면?

  문단이나 시단에 등단하면 당연히 좋겠지만 크게 의미를 두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저는 무엇 보다 자신의 작품을 많이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 하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글을 많이 쓰다보면 스 스로 경지에 이르게 됩니다. 또 다작, 다독, 다상 을 통해 작품을 폭넓게 이해하고 자신의 진정한 내면을 찾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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