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성범죄 심각한 수준이지만, 여전히 솜방망이 처벌〈106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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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성범죄 심각한 수준이지만, 여전히 솜방망이 처벌〈1069호〉
  • 유근범 기자
  • 승인 2020.04.13 13: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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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력한 처벌로 디지털 성범죄 뿌리 뽑아야…

  디지털 성범죄란 디지털 기기 및 정보통신기술을 매개로 온 · 오프라인상에서 발생하는 젠더 기반 폭력이다. 동의 없이 상대의 신체를 △불법 촬영 △유포 △유포협박 △저장 △전시하는 행위이며 사이버 공간에서 타인의 성적 자율권과 인격권을 침해하는 행위도 포괄한다. 지난달 19일 텔레그램에서 ‘박사방’을 운영하여 성착취 영상을 불법으로 제작하고 유포한 성범죄자 조주빈(25)이 구속됐다. 경찰이 현재까지 파악한 ‘박사방’ 피해자는 총 74명으로 이 중 미성년자도 16명 포함돼 있었다. 그동안 △소라넷 △웹하드 △다크 웹 등 수많은 디지털 성범죄가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수사나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아 디지털 성범죄는 더 잔혹하고 교묘한 형태로 기승을 부리고 있다. 가해자가 당당하고 피해자는 수치심과 공포 속에서 살아야 하는 이 모순된 사회, 이것이 우리가 바라던 정의로운 사회의 모습일까?

매년 증가하는 디지털 성범죄

  디지털 성범죄는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불법촬영 범죄 발생 건수는 △2016년 5,185건 △2017년 6,465건 △2018년 5,925건으로 집계됐다. 또한, 여성가족부에서 발표한 ‘2019년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보고서’에 따르면 디지털 성범죄 피해 영상 월평균 삭제지원 건수는 2018년 3,610건에서 2019년 8,213건으로 2배 이상 증가했고, 수사 · 법률 지원 연계 건수도 2018년 25건에서 2019년 44건 증가했다.

▲디지털 성범죄 피해 영상 월평균 삭제지원 건수 (출처/ 여성가족부)
▲디지털 성범죄 피해 영상 월평균 삭제지원 건수 (출처/ 여성가족부)

  특히 지난해 1월 1일부터 11월 30일까지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센터(이하 지원센터)’에 지원을 요청한 피해자 1,936명 중 남성은 241명(12.4%), 여성은 1,695명(87.6%)으로 디지털 성범죄가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연령별로는 자신의 연령을 밝히지 않은 927명을 제외하고 △20대 479명(24.8%) △10대 291명(15.0%) △30대 160명(8.3%) 순 으로 많았으며, 2018년에 비해 10대(2018년 기준 8.4%) · 20대(2018년 기준 19.1%)를 대상으로 한 범죄가 12.3%p 증가했다. 이처럼 디지털 성범죄는 매년 증가하고 있으며 미성년자까지 성적으로 유린하는 일이 발생하자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더 잔혹하고 교묘해진 디지털 성범죄

  지원센터에 접수된 디지털 성범죄 피해 유형을 살펴보면 전체 피해 건수 3,368건 중 유포 피해가 1,001건(29.7%)으로 가장 많았고 불법촬영이 875건(26%), 유포불안이 414건(12.3%)으로 뒤를 이었다. 디지털 성범죄 속성상 가해자를 특정하기 어렵고 계속되는 협박으로 인해 중첩된 피해를 겪는 경우도 절반 이상(1,162명)을 차지했다.

  최근에는 디스코드*, 텔레그램*, 텀블러(블로그) 등 서버가 해외에 있는 플랫폼을 사용하여 경찰의 직접적인 수사망을 피해가는 디지털 성범죄가 발생하고 있다. 이에 고려사이버대학교 정보관리보안학과 박대하 교수는 “해외에 있는 플랫폼이 범죄에 악용되는 경우 인터폴과 공조하여 국외 서버를 조사하거나 용의자 체포 · 인도는 가능하겠지만 테러나 마약 등이 아닌 디지털 성범죄에 인터폴이 공조할지는 의문이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처럼 해외 서버를 기반으로 한 플랫폼에서 일어난 범죄를 처벌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워 보인다.

  지난달 19일에 구속된 성범죄자 조주빈(25 · 이하 조 씨) 역시 텔레그램을 범죄의 도구로 사용했다. 자신을 ‘박사’라 칭한 조 씨는 텔레그램에서 ‘박사방’을 운영하여 미성년자를 포함한 여성 수십 명을 ‘아르바이트 모집’으로 유인했고 신상정보(신분증, 통장사본 등)를 받아 이를 빌미로 성착취 영상을 찍게 한 것으로 드러났다. 조 씨는 피해자들을 협박해 성착취 영상을 제작했고, 이를 유통해 수익을 얻었다. 피해자들을 ‘노예’로 지칭하고 일정 금액의 암호 화폐를 지급해 입장하는 유료 대화방 이외에도 ‘맛보기방’을 운영하면서 영향력을 확장했다. 또한, 박사방은 조직적으로 운영됐다. 조 씨와 함께한 성범죄자들은 △피해자 성폭행 △자금세탁 △성착취물 유포 △대화방 운영 등으로 박사방에 공모했다.

*디스코드 : 게이밍 공동체를 위해 설계된 음성 인터넷 프로토콜(VoIP) 응용 소프트웨어

*텔레그램 : 자유 클라우드 기반 인터넷 메신저이자 음성 인터넷 프로토콜(VoIP)

 

▲텔레그램 집단 성착취 범행 실체
▲텔레그램 집단 성착취 범행 실체

  ‘박사방’은 n번방을 모방한 범죄의 한 부분이며 아직도 검거하지 못한 성범죄자들은 더 많을 것으로 파악된다. 디지털 성범죄는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파괴한다. 따라서 정부에서 피해자 지원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한번 유포된 영상은 무한 복제의 가능성이 있고 반영구적이라는 점에서 재유포 되는 것을 막기란 쉽지 않다. 이에 고려대학교 정보보호대학원 김승주 교수(이하 김 교수)는 “수사기관이 국제적인 수사공조를 이끌어 내는 것은 물론 무엇보다 암호해독 기술, 암호화폐 추적기술, 다크넷 분석 기술 등 압도적인 기술력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디지털 성범죄 솜방망이 처벌, 대부분 벌금형 · 집행유예로 풀려나…

  디지털 성범죄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었다. 그동안 △소라넷 △웹하드 △ 다크 웹 등에서 수많은 디지털 성범죄가 발생했고 그 심각성에 대해 이야기 해왔지만 왜 우리 사회는 디지털 성범죄를 근절하지 못했을까?

  현재 우리나라는 여성 · 아동 · 청소년의 디지털기기 불법촬영과 유포에 대해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과 「아동 · 청소년의 성보호 에 관한 법률」 등에서 규율하고 있다. 불법 촬영물을 제작 · 유통한 자 뿐만 아니라 소지하거나 보는 것만으로도 성범죄에 가담하는 것이며 법적 처벌의 대상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법원의 판결형량을 보면 징역형 실형이 선고되는 비중은 크지 않았다. 법무부가 발행한 ‘2020 성범죄백서’에 따르면, 지난 20년간 불법촬영으로 재판을 받은 9,317명 중 5,268명에게 벌금형(56.5%)이, 2,822명에게 집행유예(30.3%)가 내려졌다. 징역형은 763건(8.2%)에 불과했다.

▲2018년 기준 지난 20년간 불법촬영 범죄에 대한 처벌현황 (출처/ 법무부)
▲2018년 기준 지난 20년간 불법촬영 범죄에 대한 처벌현황 (출처/ 법무부)

  이러한 원인으로 한동대학교 국제법률대학원 원재천 교수(이하 원 교수)는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대법원 양형기준*이 정확히 확립되지 않아 온라인 관련 성범죄에 판사들이 다소 관대한 것 같다”고 말했다. 즉, 그동안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양형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법관의 자의적인 판단에 의존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또한, 감경요인*을 고려하여 성범죄자들이 △반성문 △기부 △봉사활동 △가정환경 △정실질환 등으로 감형을 위한 행태가 이어지는 것도 문제다. 실제로 불법 다크 웹 사이트를 운영하면서 아동 성착취 영상을 제작한 성범죄자 손정우(24)는 500장이 넘는 반성문을 제출한 것이 양형에 반영돼 징역 1년 6개월 형으로 그쳤다. 이번 n번방 · 박사방에 공모한 성범죄자들 역시 수사 · 사법 기관에 반성문을 제출하고 있다. 이러자 일각에서는 성범죄자들의 감경요인을 배제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이러한 의견에 원 교수는 “반인륜적인 아동착취범죄에 대한 엄중한 기준은 있어야 하는 것이 사회적인 공감대이고, 이에 맞추어 사법정의를 구현할 필요가 있다”고 답했다.

*양형기준 : 처단형의 범위 내에서 특정한 선고형을 정하고 형의 집행유예 여부를 결정함에 있어 참조되는 기준

*감경요인 : 법률의 특별규정에 의하여 형이 본형보다 가벼운 형벌에 처하는 경우

성범죄자들 강력한 처벌만이 디지털성범죄 근절할 수 있어

  n번방 · 박사방은 단일 사건이 아니다. 소라넷 이전부터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안일한 대처가 오늘날 n번방 · 박사방을 양산했다. 정부는 2017년 9월 ‘디지털 성범죄 피해방지 종합 대책’을 만들고 디지털 성범죄 대응 조직 신설, 성폭력처벌법 등 여섯 개 법률(△범죄피해자보호법 시행령 △성폭력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공중위생관리법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전기통신사업법 △정보통신망 이용 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을 개정하는 등 디지털 성범죄 근절을 위해 노력해왔다. 하지만 디지털 성범죄의 문제는 전혀 해결되지 않고 있다. 김 교수는 “2017년 계획수립 당시 다양한 플랫폼에 대해 중장기 계획을 마련했으면 좋았겠지만, 그 당시 계획들은 웹하드나 인터넷 음란 사이트를 통한 유포를 막는 것에 그쳤다. 따라서 텔레그램이나 다크 웹, 암호화폐 등을 이용한 신규 플랫 폼에는 법률을 적용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해외에서는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어떠한 처벌이 이루어질까?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 발표한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해외 주요국의 제도적 대응 실태조사(2018)’에 따르면 영국과 미국은 기존적으로 용어 사용과 처벌 규정에서 ‘불법촬영’과 ‘불법유포’를 구별하여 각각의 행위객체를 구체적으로 규정해 처벌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현행 법률은 불법촬영과 불법유포를 함께 규정하면서 처벌 대상에 제한이 생기는 문제점이 있다. 또한, 일본의 인터넷안전협회는 심각한 피해가 예상되는 디지털 성범죄 관련 불법유해정보를 적극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있지만 우리나라 지원센터의 경우 실질적 업무 담당 기관의 인력과 재원 확보가 여전히 부족한 실정이라 지원 강화도 요구되고 있다.

  지난 9일 기준 ‘텔레그램 n번방 성범죄자들의 신상공개’를 요청하는 청와대 국민청원 동의 수는 200만 명을 넘어섰다. 법이 범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현실 속에서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강력한 대응체계를 마련하여 성범죄자들에게 엄중히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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