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진칼럼] 공정함과 공평함에 대한 고민〈106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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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진칼럼] 공정함과 공평함에 대한 고민〈1069호〉
  • 남시훈 (경영대학 국제통상학과) 교수
  • 승인 2020.04.13 13: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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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라는 전 세계적인 재난이 닥치면서 각국 정부는 비상사태를 선언하고 다양하고 파격적인 정책을 실행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재난지원금의 분배 방식이 논란이 되고 있다. 긴급 재난지원금을 전 국민 모두에게 지급할 것인가, 아니면 하위계층 70%에게만 지급할 것인가, 무엇이 타당한가 하는 것이다. 이 논쟁은 굉장히 다양한 관점에서 해석할 수 있는데, 여기서는 한 가지만 생각해 보자.

  만약 내가 상위 30% 끄트머리에 걸쳐서 아슬아슬하게 돈을 못 받았다고 가정해 보자. 아마 50만 원~100만 원 정도 되는 돈을 못 받으면 서운한 감정은 있을 것이다. 그다음 어떻게 할 것인가. 나는 나보다 더 힘든 사람이 돈을 받았으니 내가 못 받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받아들일 것인가, 아니면 나도 힘든데 돈을 못 받았으니 더 많은 사람에게 돈을 줘야 한다고 주장할 것인가.

  첫 번째 생각이 얼핏 보기에는 공동체를 위해서 더 타당해 보인다. 하지만 그것은 쉽지 않다. 상위 30%라는 기준은 생각보다 복잡해서, 만약 내가 아는 지인이 강남에 아파트가 있는데도 현재 소득이 적어서 돈을 받는다면, 월세에 사는 내 입장에서는 분배 방식이 아주 불공정하다고 느껴질 수도 있다. 이런 경우 내가 분노를 느끼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두 번째 생각을 따라가면 어떻게 될까. 하위 80%로 늘린다면, 그때는 상위 20%에 끄트머리에 걸치는 또 다른 사람들이 서운할 것이다. 하위 50%로 줄이면 그때는 상위 50%에 걸친 사람들이 또 불편하게 생각할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상대적 박탈감’을 없애는 방법은 결국 국민 모두에 게 지원금을 주는 것이 된다.

  하지만 여기에도 함정이 있다. 정부는 돈을 무한정 찍어낼 수 없다. 심한 재해가 닥치거나 경제가 매우 좋지 않으면 정부는 평소보다 돈을 많이 사용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래도 무한하게 사용할 수는 없기 때문에, 제한된 돈을 사람들이 나눠서 써야 한다. 이것을 모든 국민이 똑같이 나누게 되면 부자도 가난한 사람도 똑같이 돈을 받는다. 때로는 보편적인 지급도 필요하지만, 이 방식 역시 불공정할 여지가 있는 방식이다.

  우리 주변에 누군가는 부유하고 누군가는 가난하게 산다. 이것은 그들이 평소에 노력해 온 결과도 반영되지만, 어떤 부모님에게서 태어나는가, 자라면서 경험한 행운과 불운 등 여러 요소에 영향을 받는다. 그러므로, 노력하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는 도울 필요가 없더라도, 운이 없는 부분에 대해서는 돕는 것이 마땅하다. 누구나 갑작스럽게 운이 없어서 가난해질 수 있고, 그럴 때 정부와 공동체는 안전망을 마련해야 한다.

  다만 노력하지 않는 사람과 운이 없는 사람을 구분하기는 대단히 어렵다. 그 때문에 정부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가난을 완전히 보상하지는 않으며, ‘적당한’ 수준에서 보조한다. 그리고 여기에서도 특정한 기준을 세워서 누구를 도울지를 정한다. 하지만 덜 힘들며 혜택받는 사람을 완전히 없애기는 어렵다. 정부는 보조의 적당한 수준 과 적당한 기준을 정하지만, 완벽하고 모두가 동의하는 기준을 세우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정답은 본인에게 불리한 정책에 대해서 민주주의 정치의 수단을 통해 반론을 제기할 수는 있더라도, 어느 정도는 받아들일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나 말고 다른 사람에게 돈을 주는 것에 대해서 강한 저항이 일어나는 사회에서는, 공적 안전망이 유지될 수 없다. 부모님 덕을 보지 못하거나 불행을 겪은 사람들은 그대로 주저앉을 수밖에 없다. 그게 당신이 될 수도 있는 일이다.

  정부가 모든 것을 빼앗아 모두에게 공평하게 나눠 주는 것은 불공정하다. 그러나 더 가진 사람에게 좀 더 세금을 매기고 덜 가진 사람을 좀 더 배려하는 것이 공동체를 위해서는 필수적이다. 그 수준을 어디로 할지에 대해서는 꾸준한 토론과 합의가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상대적 박탈감 때문에 다른 사람이 이득을 보는 것을 용납하지 못하는 사회는, 그런 정도가 심해질수록 서로에게 괴로워진다. 기본소득의 방식이 필요한 경우도 때로는 존재한다. 하지만 그 전에 우리는 어려운 사람을 돕는 것을 받아들이는 방법부터 분명하게 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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