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의 외피를 둘러쓴 거짓 선동, ‘반일 종족주의’〈106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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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의 외피를 둘러쓴 거짓 선동, ‘반일 종족주의’〈1068호〉
  • 박수현 인문대학 사학과 교수
  • 승인 2020.03.29 22: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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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 하반기 『반일 종족주의』라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세상을 시끄럽게 했다. 올해 들어 ‘코로나19’의 여파로 논란은 수그러들었지만, 그 내용들이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한일 간 갈등의 원인과 무관하지 않다는 점에서 논란의 불씨는 언제든지 다시 살아날 수 있다.

  이 책은 이영훈 등 뉴라이트 학자들이 ‘이승만 TV’에서 강연한 내용을 정리한 것인데, 우선 ‘한국인은 반일감정에 사로잡힌 미개한 종족’이라는 의미의 제목부터가 도발적이다. ‘반일 종족주의’는 일반인은 물론이고 학계에서조차 전혀 사용하지 않는 생소한 용어다. 그래서인지 책이 나 오자마자 내용과 상관없이 제목만으로도 사람들의 호기심을 크게 자극했고, 판매부수가 크게 늘어난 것도 제목과 무관하지 않다.

  내용을 들여다보면 더 자극적이고 충격적이다. 대부분 일본 극우세력의 주장과 크게 다를 바 없는 내용들이다. 일제강점기에 경제 수탈(토지, 식량)이나 한국인들의 강제동원(노동자, 일본군 위안부)은 없었다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이 주장 대로라면 강제동원 문제에서 비롯된 최근 한일 간 갈등의 원인과 책임은 전적으로 한국 측에 있고 일본의 아베정권은 아무 잘못이 없다. 이뿐만이 아니다. ‘독도가 우리 영토라 할 국제법적 근거가 없다’, ‘이완용을 비롯한 을사오적에게 망국의 책임을 물어서는 안 된다’, ‘『친일인명사전』을 비롯한 최근 한국사회의 친일청산운동의 성과는 사기극이다’ 등 한국인의 상식과 정서와는 정반대의 주장들이 지면 곳곳을 채우고 있다.

  결국 지금까지 일제의 식민지 지배와 관련해 한국사회에 널리 퍼져 있는 통설과 상식들은 대부분 거짓말이라는 것이 필자들의 주장이다. 그래서 한국은 ‘거짓말의 나라’이며, 거짓말을 사실로 믿고 반일감정으로 충만한 한국인들은 ‘미개한 종족’이라는 것이다.

  이들의 주장이 과연 사실일까? 학계는 그동안 거짓말을 한 것일까? 『반일 종족주의』의 내용 들은 대부분 새로운 것이 아닌 이전부터 이 책의 필자들이 주장하던 내용들이다. 여기에 대중들을 자극하는 극우 성향의 노골적이고 편향적인 표현이 덧붙여졌을 뿐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주장이 실증에 근거한 역사적 사실로써 오랜 연구 끝에 나온 학문적 성과임을 내세우지만, 그 주장들이 얼마나 자의적이고 편향적인가는 이미 오래 전에 판명되었다. 이 책의 학문적 오류는 많은 연구를 통해 확인되었고, 그 근거 또한 차고 넘 친다.

  그럼에도 『반일 종족주의』 필자들은 자신들의 오류를 인정하지 않는다. 자신들의 주장만 이 실증적이고 역사적 사실이라고 단정한다. 많은 사람이 현혹된 이유 중의 하나도 이들이 내세운 ‘실증적’, ‘학문적’ 과시였다. 일종의 자기 확증 편향이다. 때문에 이들은 수많은 연구 성과와 근거들은 외면한 채, 자신들에게 유리한 극히 부분적인 자료나 자의적으로 만든 통계 수치를 활용해 역사를 부정한다. 또 현재 학계에서는 거의 수용하지 않는 주장이나 학설을 문제 삼아 학계 전체를 매도하며 자신들의 주장을 정당화 한다.

  이렇게 일부 자료나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근거로 학계의 통설을 전면 부정하거나 수정을 가하려는 주장이나 이론을 흔히 ‘역사수정주의’ 또는 ‘부조적(浮彫的) 수법’이라 한다. 역사수정주의의 핵심은 ‘역사부정’이다. 『반일 종족주의』의 내용은 이 수준이다. 즉 『반일 종족주의』는 학문의 외피를 둘러쓰고 있지만, 역사수정주의에 매몰된 거짓 선동에 지나지 않는다.

  이 책에서 주장하는 내용들은 학계에서는 통하지도 않고 학술 논쟁의 대상도 아니다. 우려스러운 것은 학문 외적인 파급력이다. 『반일 종족주의』는 국내에서 십만 부, 일본에서는 번역본 수십만 부가 팔렸다. ‘반일 종족주의 현상’이라 할 만한 대단한 판매량이다. 주목할 것은 ‘반일 종족주의 현상’이 극우 성향 우익들의 결집과 선동, 일본 극우세력의 지원, 한일 역사수정주의자들 연대의 결과라는 점이다.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이 부분, 즉 거짓 선동을 통한 극우세력 ㆍ 역사수정주의자들의 준동과 세력 확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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