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놀로그] 여성, 이민자, 과학자〈1067호(개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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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놀로그] 여성, 이민자, 과학자〈1067호(개강호)〉
  • 김일송 공연칼럼니스트
  • 승인 2020.03.16 11: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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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마리 퀴리〉

  지난 3월 8일은 여성의 날이었다. UN 여성기구에서는 올해의 표어로 ‘평등 세대 : 여성의 권리 깨닫기’를 선정했다. 함께 발표한 자료를 보면, 여성에 대한 사회적 장벽은 여전히 견뢰해 보인다. 2020년 현재 전 세계 여성 국회의원의 비율은 24.9%이며, 세계적 그룹 가운데 여성 CEO의 비율은 6.6%인 것으로 나타났다. 예술분야도 마찬가지다. 봉준호 감독이 동양인 최초로 감독상 등을 석권한 아카데미의 92년 역사상 감독상을 받은 여성 감독은 캐서린 비글로가 유일하다. 군소리가 많았다.

  이번에 소개하고자 하는 이는 여성 최초의 노벨상 수상자 마리 퀴리다. 마리는 라듐을 발견하여 방사성 연구를 발전시킨 선구자이자, 그 공로를 인정받아 1903년 여성 최초로 노벨상을 받은 과학자이다. 그리고, 8년 후 다른 업적으로 다시 한 번 노벨상을 받으며 노벨상 역 사상 최초의 2회 수상자라는 영광을 거두었다. 또한 마리는 1906년 여성 최초로 소르본대학 정교수로 부임했으며, 사후에는 위인들에게만 허락된 영예의 전당 팡테옹에 여성 최초로 안치되었다. 남성 중심 세계의 유리천장을 깬 여성이라는 점에서 마리 퀴리는 드라마 주인공으로 손색없는 인물이다.

  그런데 마리에겐 여성, 여성 과학자라는 사실 외에 또 다른 소수자적 정체성이 있다. 그는 당시 러시아의 지배를 받았던 폴란드 이민자였다. 출신의 배경으로 인해 한때 그는 외국인 혐오의 제물이 되었다. 1910년 그가 프랑스 과학 아카데미 회원으로 입후보했을 때, 보수언론은 그가 프랑스인이 아니기에 자격이 없다는 주장을 펼쳤다. 나중에 그가 전 남편과 사별 후 동료 과학자와 만났을 때, 황색언론은 마리를 프랑스 여인의 가정을 파괴한 폴란드 요부로 묘사했다. 우파 언론은 더 나아가 마리를 프랑스의 국방력을 약화하려는 폴란드 간첩으로 묘사했다. 이처럼 마리에게 호의적이지 않았던 환경은 그의 드라마를 한층 더 극적으로 만들어준다.

  이처럼 여성 위인의 성공담을 그리려 할 때, 마리 퀴리의 드라마 같은 삶은 더없이 좋은 소재다. 그러나 뮤지컬 <마리 퀴리>가 선택한 길은 앞서 서술했던 사건들과 무관하다. 뮤지컬은 마리의 빛나는 성취와 함께 거기에 드리워 진그늘에 주목한다. 암을 치료하는 동시에 암을 유발하는 라듐처럼. 위험성이 밝혀지기 전 라듐은 형광도료로 인기가 높았다. 라듐은 립스틱, 매니큐어 원료로 사용되었는데, 심지어 만병통치약으로 알려지면서 비누, 치약, 연고, 음료수에 쓰이기도 했다. 라듐의 위험성이 알려진 것은 ‘라듐 걸스’가 등장하면서부터다. 라듐 걸스는 라듐에 피폭당한 시계공장 여성 노동자들을 칭하는 말이다. 야광판에 라듐을 덧칠하는 과정에서 라듐을 섭취해 괴사, 골절, 빈혈 등의 질환을 겪게 되었다. 이들의 존재는 그들이 1927년 시계공장을 상대로 고소장을 제출하면서 알려졌다.

  이렇듯 뮤지컬은 마리의 성공한 삶과 라듐 걸스의 안타까운 죽음을 함께 놓으며, 마리의 공과 과를 균형감 있게 전개한다. 라듐을 발견하기까지의 고난보다 라듐의 위험성을 인지한 이후의 고민에 더 큰 공을 들이면서, 뮤지컬은 자신의 분야에서 입지전적 업적을 쌓은 여성의 성공담에서 과학윤리를 비롯해 보편적 생명윤리 문제를 제기하는 작품으로 도약한다. 이러한 문제에 대한 답을 마리는 연대에서 찾는다. 그것이 핵심이다. 그러나 이때의 연대를 여성만의 연대라 한정하면 그것은 반쪽짜리 정답이다. 마리가 연대한 이들은 여성이자 노동자였으며, 그리고 장애인이었다. 통칭하자면 소수자들이다. 그 답은 지금도 유효하다.

  여성의 날의 유래로, 1908년 미국 뉴욕의 럿거스 광장에서 여성 노동자들이 벌였던 대규모 집회를 정설로 보고 있다. 그들은 열악한 작업장에서 화재로 숨진 노동자들을 기리며, 근무시간 단축과 노조결성의 자유, 그리고 여성참정권 보장을 주장하며 시위를 전개했다. 그들 덕분에 세상은 조금 더 나아졌지만, 아직도 이 세상엔 나아져야 할 그늘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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